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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壁)에 던진 공
 닉네임 : 쓴소리  2022-01-14 06:01:13   조회: 4843   
벽(壁)에 던진 공



벽(壁)에다 공을 던지면 공은 어김없이 자신에게 돌아오고 반듯하게 누어서 침을 뱉으면 자기 얼굴에 떨어지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세상에 불평을 던지면 자신에게 불평이 돌아오고 상대에게 미소를 던지면 자신에게 미소가 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인생의 삶은 메아리 같은 것이다. 내가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긍정적인 효과가 돌아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이다. 콩 심으면 콩이 나고 팥 심으면 팥이 나는 것은 파종의 원리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결과이다. 거울을 보고 내가 웃으면 반드시 거울 속의 나도 웃고 내가 거울 보고 화를 내면 거울 속의 나도 반드시 화를 내는 모습으로 보인다.



인생의 삶이라는 것은 상대적이어서 우리가 준 것을 충실하게 거짓 없이 반드시 되돌려주는 것이다. 우리들의 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속담에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도 곱고 오는 말이 고아야 가는 말도 곱다”라는 말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 행동 말은 언제인가는 시간적인 약속은 없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은 공을 벽에다 던진 것이나 같은 이치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은 그리 쉽지는 아니하다. 다른 사람이 내게 접근하지 아니하는 것은 자신의 얼굴에 접근금지라는 표시를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속담에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에는 피가 난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한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은 사람이 선과 악을 행하면 반드시 결과가 그대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선악(善惡)에 따라서 현재의 행복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 지은 선악에 따라서 내세(來世)에서의 행복과 불행이 생기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짐승을 잡는 도구인 부메랑은 던지면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원이리다.



그러므로 사람의 삶은 벽에다 공을 던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선(善)을 던지면 선(善)이 돌아오고 악(惡)을 던지면 악(惡)이 돌아오는 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이원리를 알고 살아야 할 것이다. 만약 이원리를 부정하고 악을 행한다면 성경은 “악인의 후손은 영영 이름이 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속언에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라고 하였지만, 끝이 없다는 말을 곡해(曲解)하여 벌 것 아니라는 것으로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면 이는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善)의 끝은 상(賞)이라는 뜻이지 벌(罰)을 뜻하지는 아니한다.



그러나 악의 끝은 징벌(懲罰)을 말하는 것이지 상(賞)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파종(播種)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속담에 “콩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둔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심은 대로 그대로 거둔다는 원리이다.



어떤 어린 남자아이가 약국에서 진통제를 훔쳤다. 약사가 그 아이를 붙들어 혼을 내주며 하는 말이 “야 이 도둑놈아 너 커서 무엇이 되려고 벌써 도둑질이야”라고 하였다. 그때 수프 가게 주인이 나와서 약을 파는 아주머니를 말리며 “이 약 얼마요” 하니 약국 주인이 하는 말이 “만원이요” 하니 수프, 가계 주인이 만원을, 주니 돈을 받고 들어갔다. 수프 가게 주인아저씨는 아이에게 묻기를 “야야 이 약 누구에게 주려고 하느냐?”라고 물었다.



이때 아이는 “엄마가 아파요”라고 대답을 하니 수프 가게 아저씨는 아이에게 하는 말이 “여기 야채수프가 있으니 가져가서 엄마에게 드려라”라고 하니 아이는 “네 감사합니다.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드리고 생각하기를 “내가 받은 모든 호의에 감사하자 그리고 세상의 아픈 사람을 위해 꼭 의사가 될 거야”라고 다짐하였다.



그리하여 그 아이는 세상에서 받은 감사할 점들을 종이에 하나씩 메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공부하였다. 30년 후에도 야채수프 가게 주인은 수프 가게를 하면서 여전히 선행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딸이 병원비 청구서를 받았는데 2,700만 원이라 망연자실(茫然自失)했다. 문제는 아버지가 혼수상태라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런데 그 병명이 뇌경색이라 속히 수술하지, 아니하면, 안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아버지 침상에서 눈을 뜨니 병원비가 다 지급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편지에 “이 병원비는 해결되었습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결국, 이는 30년 전에 은혜를 입은 어린아이가 의사가 되어 병원비를 낸 것이다. 베푼 작은 선행(善行)이 이자를 달아서 30년 후에 2,700만 원으로 자기 앞으로 돌아온 것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감사 메모)라는 책에서 이는 실화를 근거로 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사람은 베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혜를 갚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속담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은 이 말은 문제가 있는 말이다. 슈바이처는 독일에서 목사인 아버지 영향을 받아 목사, 철학박사가 되어 대학교수로 일했다.



그는 말하기를 “베푼 선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바위에 새겨라”라고 하였다. 이는 베푼 선도 기억하지 말고 흘러가는 물에 새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도 잊어서는 아니 될 말이다.



오늘의 사회에서 사는 모든 사람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에 와있다. 각자는 지금 공을 벽에다 던지는데 사회나 국가에 해를 끼치지 아니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한 사람은 동서남북으로 활보해도 경호원이 동행할 이유가 없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경찰서를 방문해도 두려움이 없고 검찰청이나 법원을 출입해도 두려움이 없지만, 죄를 지은 사람은 누가 따라오지 아니하여도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성경에 “악인(惡人)은 쫓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義人)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라고 하였다.

특히 권세 잡은 자들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말을 가슴에 새기고 그 자리에 있을 때 잘해야 할 것이다.



그 자리에 있을 때 은혜를 베풀라 그리하면 반드시 그 씨앗의 열매를 거둘 것이다. 성경에 어느 부잣집에 불의한 청지기가 자신의 잘못으로 쫓겨나게 되었는데 장래를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주인에게 빚을 진 사람들을 찾아가 빚을 얼마씩 탕감해 주었는데 청지기의 주인은 그의 행위를,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칭찬하였다.



이는 퇴직 후를 생각해서 현직에 있는 동안에 마지막으로 선한 일을 좀 하자는 의도라고 보아야 한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아무튼, 공을 벽으로 던지고 산에 올라서 소리를 지르면 그대로 메아리가 되어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엄중한 진리만을 기억하고 처신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현명한 처세술(處世術)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은 “알아서 해”라는 말이다. 정말 알아서 처신할 일이다. 누가 시킨다고 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2022-01-14 0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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