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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기독교에서 당선 축하라는 말 타당한가?
 닉네임 : 쓴소리  2021-10-23 16:23:21   조회: 535   
독교에서 당선 축하라는 말 타당(妥當)한가?

당선(當選)이란, 말은 선거에서 뽑힘과 심사나 선발에서 뽑힘을 뜻하는 말이다.

정치적(政治的)으로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어 상대 후보를 제치고 승리하였으니 축하한다는 말이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심히 싸워 당선되어 이겼으니 축하한다는 말이며

각종 경쟁에서 상대(相對)를 물리치고 당선되었으니 당연히 축하받아도 크게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基督敎)에서 총회장이나 임원출마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직분을 받은 것도, 당선(當選)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축하(祝賀)라는 명제(命題)를 붙여

감사예배(感謝禮拜)라는 명분으로 모여 하나님께 영광보다는 지명(指名)된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성경적(聖經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특히 성경적(聖經的)인 직분(職分)은 제비를 뽑든 투표를, 하든지 그 결정은 하나님께서 작정한 일이다. (잠 16:33)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의 지명 즉 선택에 있다. (사 43:1 엡 1:4)

그렇다면 당선(當選)이라는 말은 성경과는 거리감이 있다. 주께서 열두 제자를 택하실 때 지명하여 부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산에 여우도 굴이 있고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제자의 가는 길은 영광(榮光) 받을 일도 아니고 축하(祝賀)받을 일도 아니며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당선축하(當選祝賀)라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리하여 베드로가 예수를 따르면서 하는 말이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쫓았으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라고 하였다.

이는 주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현세(現世)에서는 고난과 핍박을 받을 뿐 축하나 영광과 같은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주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자로서 축하받을 생각은 고사하고

고난부터 받을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오늘의 목사들은 잊어버리고 먼저 하늘에서 받아야 할 축하를 미리 받는 것은 기독교 원리 원칙에서 벗어난 민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은 직분을 받은 즉석에서 하는 말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하였다. 이는 충성에, 대한 생각이 우선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기독교 안에서 교회에서나 노회와 총회에서 직분을 받으면 일반사회와 같이 경쟁자들과 싸워서 승리한 것처럼, 당선인(當選人) 축하라는 명제를 붙여

주의 일을 맡은 자들을 상대하여 “당선축하(當選祝賀) 감사예배(感謝禮拜)”라는 명제(命題)의 이름으로 그들을 축하하는 것은 성경(聖經) 적인 행사(行事)도 아니고 교회 헌법(敎會憲法)에도 없는

행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바울 사도는 직분을 받고 하는 말이 “우리 주께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게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라”라고 하였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내가 선거에서 이겨 당선됨으로 감사하고 축하, 받아야 한다는 논리(論理)가 아니고 직분을 맡겨주셨다는 점에서 감사하다는 논리(論理)이다.

그리하여 그는 직분의 성격을 권위나 권세로 여기지 아니하고 주님이 직분을 주신 목적을 분명히 말하였는데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從)이 된 것을, 전파함이라”라고 하였다.

이는 권위의식(權威意識)이 아니라 사명의식(使命意識)에 사로잡혀서 성도들 위에 군림(君臨)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들의 종(從)이 되겠다는 사명의식(使命意識)이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직분을 감당할 비장한 각오는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직분을 감당할 결심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生命)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하였다.

이는 직분을 받아 축하나 받는 것으로 알지 아니하고 그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草芥) 버리겠다고 단단한 각오와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주의 일하는 목적은 “오직 전과 같이 이 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고 하였다.

이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그리스도가 존귀(尊貴)하게 되게 하겠다는 마음뿐이지 축하와 환영과 대접이나 받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를 본받아 축하 모임을 추진하는 주최 측에서 아무리 당선 축하예배(當選祝賀禮拜)를 드린다고 해도 임원의 사명을 맡은 자들은 어원(語原)과 취지(趣旨) 자체가 성경(聖經)과 관계없으니 직분 받은 자들이 정중하게 그 제안을 사양(辭讓)했어야 옳았다.

언제까지 이런 관행(慣行)을 계속할 것인가? 매우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와 같이 환영(歡迎)과 칭찬(稱讚)과 상급(賞給)은 맡겨주신 일에 충성(忠誠)을 다한 후에 기대해도 늦지 않다. (됨 후 4:7-8)

직분을 받기는 받았는데 한 달란트 받은 자와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와 같은 꼴이 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하고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믿음으로 기도하며 겸손하게 고민하면서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할 일이지 축하나 받고 으쓱할 때가 아니다.

주께서 가룟 유다에게 하신 말씀이 “차라리 너는, 태어나지 아니하였다면 좋을 뻔하였다.”라고 하셨는데 차라리 중책(重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좋을 뻔하였다는 말을 들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기독교의 모든 직분은 영광이나 받고 축하나 받는 그런 직분은 하나도 없다.

법궤를 수레에 싣고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두 마리는 새끼를 떼어놓고 울면서도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목적지까지 가서 끝내는 번제물(燔祭物)로 그의 소임(所任)을 다하였다.

비록 짐승도 그 사명을 다하기까지 축하는 일은 고사하고 죽음으로서 직을 감당했는데 오늘의 주의 일을 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는 사람들이 당선 축하라는 명분으로 영광이나 받아서 되겠는가?

깊이 생각하여 앞으로는 이와 같은 일들은 철저하게 제도적(制度的)으로 금지(禁止)해야 하고 직분(職分)을 맡은 자들은 솔로몬 왕처럼 직분을 감당할 지혜(智慧)를 달라고 기도(祈禱)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2021-10-23 16: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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