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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욕망(三代慾望)을 이기는 비결은 절제(節制)뿐 (하)
 닉네임 : 쓴소리  2021-10-22 12:55:36   조회: 491   
삼대욕망(三代慾望)을 이기는 비결은 절제(節制)뿐 (하)

사람은 물욕(物慾)과 성욕(性慾)을 채우고 나면 오래 살고 싶은 생욕(生慾)이 생기게 되어있다.

이 많은 돈과 쾌락(快樂)을 즐길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되면 그다음의 욕망은 더 오래, 살면서 돈도 마음대로 쓰고 마음껏 즐기고 한없이 오래 살고 싶은 심정이 생기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는 없다고 본다.

물론 돈도 없고 즐길 여유도 없는 병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사람과 먹을 것도, 없고 모진 병에 걸려 밤새도록 잠을 한숨도 못 자고 고통받는 사람은 삶이 괴롭고 지겨울 수 있어 살기보다 죽기를 원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리하여 하나밖에 없는 귀한 생명을 극단적인 자살(自殺)이라는 방법을 택하여 생을 마감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그 같은 경우는 특수한 경우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 죽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생의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늙으신 어르신이 입으로는 그만 살고 죽고 싶다고 하지만, 막상 어느 청년이 “할아버지 살기가 싫으세요. 그럼 제가 죽여드리겠습니다.”하고 말을 건넨다면 어르신의 반응은 어떨까? 당장 화를 내며 꾸중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거짓말 세 가지가 있다는데 처녀가 시집가고 싶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노인이 죽고 싶다는 말도 거짓말이라는 것이고 상인(商人)이 손해 보고 판다는 말도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속에 있는 말 중에 참말도 있겠지만, 통상적으로 거짓이 많다는 것이다.

아무리 죽기를 원한다고 하는 할아버지라도 만세 수나 하시고 오래오래 행복하시고 자녀들의 효도 받으시며 장수하세요 하면 흐뭇한 모습이지만, 오늘 밤이라도 돌아가세요 하면 얼마나 서운한 표정이겠는가? 이것이 인간의 생에 대한 욕망이 있다는 증거이다.

옛날 진시황제는 불로초(不老草)와 불사약(不死藥)을 구하였으나 그도 죽음을 한 시간도 늦추지 못하였다. 세상에 아무리 칼 잘 쓰는 무사도 죽음은 베어내지 못하고 총 잘 쏘는 특등사수라도 죽음을 쏴죽일 수는 없으며 의사나 약사라도 죽음을 피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옛날 사람도 죽었고 현재의 사람도 죽으며 미래 사람도 죽을 것이다. 성경은 기록하기를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죽음은 예약도 안 되고 죽음은 전적으로 비밀이다. 그리고 죽음은 남녀노소 차별이 없다.

서양 사람도 죽고 동양사람도 죽으며 구라파 사람도 죽고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는 남녀노소(男女老少)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욕과는 무관하게 인간은 한번 태어나면 한번은 죽는다는 것이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眞理)임을 명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소극적(積極的)인 삶을 살지 말고 죽음을 고대하는 적극적(積極的) 삶을 사는 것이 생욕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죽음은 두렵거나 싫은 것이 아니고 매우 좋은 것이며 행복의 마을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솔로몬 왕은 죽음에 대하여 말하기를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처럼 됨이라 산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지혜 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되 우매 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는 말이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산 자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가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라고 하였다.

속언에 “이 꼴 저 꼴 보지 아니하려면 죽는 것이 낫다.”라고 한 말이나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솔로몬 왕은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만연한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겠다고 생욕에 사로잡혀 허덕이는 것보다는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죽음을 고대하며 사는 삶이 더욱더 행복하고 사자(獅子)와 같이 담대하고 떳떳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럼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삶을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이는 언제인가 나는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죽음을 분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무엇인? 그리고 죽음 다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이다.

그럼 어떻게 죽을까? 여기에 해답은 다윗왕은 왕이지만 세상 부귀영화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며 살면서 하는 말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고 하고 “나의 힘이 되시는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하면서 신앙생활에 열중하며 사는 보람을 느끼고 살았다.

이는 자신의 삶이 이 세상뿐 아니고 죽음 후에도 다음 세상의 삶이 연속된다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죽음을 앞에 두고 아들 솔로몬을 불러놓고 유언하기를 “너는 대장부가 되어 하나님을 잘 믿으라”라고 하였다. 이는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신앙생활 잘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사는 동안 선한 일을, 하고 남을 돕고 좋은, 일하다가 죽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수명이 무한정하게 긴 것이, 아니라 모세가 말하기를 “우리의 수명은 70이요 건강하면 80이라도 수고와 눈물뿐이라”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좋은 일만 해도 다 못하고 갈 것인데 악한 일을 하여 타인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못된 짓만 하다가 죽으면 사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욕먹는 생활보다 칭찬받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세상에서 오래 살고 싶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오래 살기를 욕심부린다면 지는 해를 붙들어 매야 할 것이다. 이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욕은 욕심일 뿐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정중히 받아들이고 모아놓은 물질을 쾌락에 사용하지 말고 한 푼이라도 타인의 복지를 위하여 사용한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게 받아드릴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이 세대에 부한 자에게 마음을 뒤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위하는 것이라”라고 하였다.

자기 쾌락만을 추구하며 오래 사는 것보다는 남을 위하여 짧게 사는 편이 훨씬 값진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에 내 것이라 보장된 것은, 하나도 없다. 가옥이나 토지를 사도 등기(登記) 전에는 내 것이 아니고 등기이전이 되었어도 전쟁이 나서 국가가 적국의 손에 넘어가면 그 또한, 내 것이 아니며 등기되고 평화의 시대에 살아도 자신이 죽으면 빈손 들고 가야 하니

내 것이라는 것은 그 무엇도 없으니 욕심을 버리고 현재의 있는 것으로 만족하게 여기며 살려는 욕심보다 어떻게 살까를 연구하며 인간답게 살고 인간답게 죽는 것도 귀하지만,

성자같이 살다가 성자같이 죽는 것은 매우 귀한 것이니 개같이 살다가 개같이 죽는 일은 없도록 모든 욕망을 버리고 절제하며 만족하게 사는 삶의 철학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2021-10-22 12: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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