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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기독교들이 애국 운동에 유별나나?
 닉네임 : 김주범  2021-09-15 14:24:47   조회: 714   
왜 기독교들이 애국 운동에 유별나나?



1. 우리는 왜 자유를 추구해야 하는가?


가. 예수 님이 오신 이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개역한글, 요8:32 )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 개역한글, 요8:36 )

예수 님이 오신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한 이유는 우리로 자유케 하기 위해서이다(요 8:36). 자유는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이다. 자유에 대해 바울은 말한다. 우리의 하나님의 형상화가 바로 자유 실력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 개역한글, 롬8:21 )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개역한글, 고후3:17-18 )

우리가 이르게 되는 하나님의 영광의 내용은 자유이다. 이 자유가 증대 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하여 지는 것이다. 이 자유는 주의 영의 실제적 증대로 이루어진다. 모든 피조물들의 바람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다. 주의 영으로 인한 자유, 곧 아버지의 자유에 이르도록 도우실려고 예수께서 오셨다.



나. 예수 님의 제한된 자유.

자유에는 절대 무한의 자유가 있고, 의미있는 제한된 자유가 있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자유는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이다. 자유의 근원은 아버지이다. 그러면 아버지의 자유는 문제한 적 자유인가?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는 자유인가?아니다. 아버지도 제한 된 자유를 가지고 계시다.

미워하실 수 없는 자유, 죽일 수 없는 자유, 거짓말 할 수 없는 자유,[1] 도둑질 할 수 없는 자유, 진리를 포기할 수 없는 자유 등, 많은 제한된 자유를 가지신 분이 아버지 하나님이다. 예수 님도 마찬가지이다.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개역한글, 막14:36 )

아들은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이 아들의 자유는 아버지의 뜻 안에서의 자유이다. 아버지의 뜻을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하는 그런 자유가 아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 개역한글, 요10:18 )

예수 님은 아버지의 뜻인 죽음을 자신의 자유 행사를 통하여 스스로 받아들이셨다. 육신적으로는 죽임당하심이 싫지만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자유 행사를 하셨다. 예수 님의 자유는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완전히 자원하는 자유이다. 우리의 자유 역시 아버지의 뜻을 위한 제한 된 자유이다. 이 자유만이 하나님 형상의 자유이며 주의 영으로 인한 자유이다.



다.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가?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개역한글, 요8:34 )

죄로부터의 자유이다. 예수 님의 이 죄는 범주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한다.

윤리 도덕상의 죄가 있고, 법상의 죄가 있다. 대부분 이들 범주에서의 죄는 연결성이 있지만, 아주 아닌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도둑질하지 말라”는 세상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죄의 규정이라 볼 수 있지만, “교회에 가라”는 문화와 나라에 따라 다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주일 날 교회 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주일 날 교회에 가는 것을 금하는 나라나 문화가 있다. 이들에게 교회에 가는 것은 죄가 된다.

성경은 이 같은 죄들 보다 더 근원적인 죄를 말한다. 그것은 바로 마귀의 거짓말과 그것을 따르는 것이다. 진리 상의 죄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보고 아저씨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죄이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훌륭하다 해도 하나님의 진리를 모르는 것은 죄이다. 그리고 이 진리대로 살지 않는 것이 죄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가 아주 중요하다.

거의 온 세상에 시스템화 된 죄들이 있다. 마귀의 거짓말에 근거한 도덕, 윤리, 사상, 문화, 법, 조직들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만들어진다. 이 세상은 마귀 거짓말의 철옹성의 진지로 세워졌다. 낮은 단계에서의 죄, 높은 단계에서의 죄들이 있다. 하나님의 것들에 대해 단순한 비방에서 죽이기까지의 많은 죄들이 있다.



우리가 자유케 되어야 할 죄는 단순한 도덕적 죄만이 아니다. 마귀의 거짓들이고, 그 거짓에 기초해 만들어진 모든 도덕, 윤리, 사상, 학문, 법, 조직, 사회 시스템, 국가 시스템, 세계 시스템들 등이다. 그리고 그것들에 따라 죄의 삶을 사는 것 들이다.



예수 님이 오신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시다.[2] 우선 마귀의 거짓말을 멸하셔야 한다. 그리고 이 마귀의 거짓말이 기초가 된 시스템화 된 죄들을 멸하여야 한다. 또한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그들의 왜곡된 도덕들, 삶의 습관, 관습 스타일들을 파쇄하여야 한다. 우리들도 그것들을 멸하고, 그것들로부터 자유케 되어,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따르는 것에 전적으로 자원하는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자유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멸하고 그것들로부터 자유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라. 예수 님은 우리를 어떤 방법으로 자유케 하시는가?

무엇이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있는가? 예수 님은 말씀하신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개역한글, 요8:32 )

어떤 사람이 직접 우리를 깊은 구덩이에서 건지듯, 아들이 그렇게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 님은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로 알게 하여 영으로써 몸의 욕심과 행실을 죽이게 함으로써[3]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도록 살게 하신다. 죄로부터의 자유의 삶을 증대시키신다. 그리하여 이렇게 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게 하여 모든 피조물들의 신음을 멈추게 하고 노래하게 만드는 것[4]이 예수 님의 진리를 통한 자유 사역의 목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개역한글, 요17:17 )

예수 님은 진리를 말씀하셨다.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 개역한글, 요8:45 )

즉 예수 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다. 진리를 전하셨다. 예수 님이 전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이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 개역한글, 요12:49-50 )

때문에 예수 님은 자신이 진리의 왕이라 말씀하셨으며, 자신은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다.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 개역한글, 요18:37 )

예수 님은 진리를 증거하시기 위해 오셨다.



진리를 알아야 자유케 된다고 하셨다. 즉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자유케 된다는 것이다. 마귀의 거짓에서, 마귀 거짓말에서 기인하여 제도화 된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모든 어두움의 삶으로부터 자유케 되려면 예수 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믿어야 한다.



진리를 알아 자신을 구원하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도록 우리는 참 된 자유에 이르러야 한다.



마. 예수님께서는 무슨 진리를 전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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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외적 “자유”를 위한 싸움을 해야하는 이유.

우리의 육신적 세상적 자유를 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자유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도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다. 이 말은 “나는 나 스스로 나의 존재를 성립시키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이룬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외형적인 형상이 아니라 내면적 형상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어떤 내면적 형상인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본질적인 형상은 “스스로 있는 자”란 형상이다.



우리 역시 “스스로 우리의 존재를 성립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존재를 완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무런 제한이 없는 자유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을 위한 우리의 근원적 자유를 제한하고 말살하는 것을 정상으로 알고 있다.



마치 율법과 같이.

원래 율법의 근본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제한 하는 것인가? 당연히 하나님을 위한 것이 율법의 근본 목적이다. 그런데 율법은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이 되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a law)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 개역한글, 요한복음19:7 )

이 법이 바른 법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법으로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한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법이 지당한 법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법은 근원적으로 잘못된 법이다.



에덴 동산에서 “스스로” 행사해야 할 자유는 2가지 범주였다. “스스로 해야 할 자유”와 “스스로 하지 않아야 할 자유”였다. 하나님의 정상적인 자유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제한 없이 자유를 사용하여야 하는 자유와 그것을 해치는 것은 스스로 하지 않아야 할 자유였다.



유대인들의 법은 이 원칙을 거스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잘못된 그른 법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믿는다. 그들의 법에 따르면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거역하는 법을 주신 것이다.



오늘날의 법은 어떤가? 사람들의 기본적인 권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기 위한 자유를 마음 껏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존재는 참된 자유 안에서만 가능하다. 법은 국민들의 이 참 된 자유를 가질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국민들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며 지켜주기 위하여 법들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이 그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무엇을 만들때는 반드시 그것의 목적이 있다.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것에도 목적이 있다. 이것을 알면 바른 법을 만들고 지켜 나갈 수 있지만, 모르면 하나님을 거스리는 법을 만들고 그것을 강제할 수 밖에 없다. 슬프게도 이 땅의 많은 법은 우리의 천부적 권리인 자유를 제한한다. 모든 왜곡된 법은 창조주와 우리가 그 창조주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모르며 또한 무시하는 것의 결과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법은 다음과 같다. 이런 법들은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이며, 우리의 천부 인권적 자유를 억압한다.



● 창조주를 지우려는 법을 가진다. 사상 영역에서, 그리고 교육영역에서. 특별히 진화론은 창조주의 존재를 망각하게 만들려는 사탄의 아주 성공적인 작품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고 있다. 창조론을 가르치면 처벌된다.

●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차단하고 박탈한다. 성경교육 폐지, 교회 폐지, 전도금지, 이를 어기면 각종 불이익을 주는 법들.

● 우리들의 이동을 제한한다. 특별히 공산주의 사회에서 그렇다.

●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제한한다. 모임과 대화와 집회와 언론의 자유를 박탈한다. 이것도 공산주의 사회에서 그렇다.

● 자업자득의 권리를 박탈한다. 사유 재산 금지, 재산 국유화. 배급제. 이것도 공산주의 사회에서 그렇다.

● 자녀 출산의 권리를 박탈한다. 사회구조를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것을 어렵도록 만든다.

● 하나님의 창조 기본 질서를 전복한다. 성차별, 동성애 차별 금지 법등 온갖 종류의 차별 금지법들이다.

● 우리는 불가피하게 한계상황을 가지게 하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 육체의 유지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먹고 거주하고 입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국가가 공권력을 행사하는 정치구조를 가짐으로 국민들은 천부권을 제한 또는 박탈 당한다.

● 왜곡된 자유.

자유는 제한적인 자유이다. 그러나 이것을 왜곡하여 절대 자유로 왜곡하여 악을 행하는 것도 자유권이라 한다. 독약을 마치 간식처럼 판매한다면, 이것은 법적으로 처벌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이 처벌이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저들의 자유는 자유를 소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파괴를 위하여 남용하는 것이다. 그들의 자유는 우리들을 소중하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자유는 무엇이나 다 해도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할 것은 하고 하지 말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무조건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다.

● 인간의 행복 자체가 목적인 자유도 강도의 자유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망각한 인간들 모두는 강도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자유를 사용하기를 바라시건만, 인간들은 그들의 배와, 행복과 탐욕과, 인간 자체들의 천국을 위해 자유를 사용한다. 도덕적으로 아주 훌륭해도 하나님의 목적의 삶을 살지 않는 자는 모두 강도며 절도들이다.

● 운동권 사람들이 한 때는 자유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그들이 자유를 위해 싸운 것은 그들의 공산화 운동을 위한 자유를 가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지금 인권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인권과 연결하여 주장한다.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않는다. 천부권적 자유가 아니라, 공산당 사회주의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고자 싸웠다. 그 부산물로 개인적으로 자유가 더 증진 된 것은 있지만, 결국 그들은 그들만의 자유를 위하여 사람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이 원했던 자유의 가면이다.



사. 진정한 자유가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이루고자 하는 이들이여,

자유를 위해 생명을 걸고 싸워야 한다. 예수께서 왜 죽으셨는가?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이다. 이 작금에 자유를 위해 싸우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구원은 단순히 지옥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의 생명을 아버지 하나님같이 완성하여 “스스로”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 개역한글, 막12:30 )

아버지의 우리 창조 목적을 위해, 우리는 반드시 진리를 알고 사랑하고 살기 위한 자유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우리의 자원적 자유를 100% 보장하는 자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의 자원적 자유는 진정한 외적 자유가 보장 될 때에만 연습될 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우리 존재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자유를 필요로 한다. 때문에 진리를 알고 사랑하고 살기 위한 자유를 억압하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 이 자유를 위해서 우리는 싸워야 한다. 예수께서 마귀와, 아버지를 배역하는 자식들과, 마귀 체제를 옹호하는 체제와 싸우셨듯 우리도 싸워야 한다. 이것들이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제한한다. 자유를 위한 전쟁은 진리를 위한 전쟁이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꿈과 희망, 그리고 목적을 위한 전쟁이다. 외적 자유 없이는 우리의 “자유 실력”을 완성할 수 없다. 이 자유 실력이 없으면 아버지의 형상을 이룰 수 없으며, 영광으로 영광에 이를 수 없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최고 목표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마음껏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자유가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가 행한 것에 따라 갚아주시는 아버지의 상이 합당한 것이 된다.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이 책임을 물으신다면, 그것은 부당한 것이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 개역한글, 마16:27 )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개역한글, 계19:8 )

자유는 우리의 생명이다. 우리에게 자유가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때문에 우리 기독교 인들은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이다.
2021-09-15 14: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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