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인신 비하용어를 사용하거나 욕설, 사이비 선전, 광고, 도배글은 즉시 삭제합니다.
금칙어가 적용이되어 있어 금칙어 사용시 글쓰기가 제한됩니다.
 적정수명(適正壽命)은 80세가 한도(限度)
 닉네임 : 쓴소리  2021-09-03 08:38:09   조회: 969   
적정수명(適正壽命)은 80세가 한도(限度)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은 진실일까? 아니면 그냥 해보는 말, 일까? 인간은 생욕(生慾)이 본능적(本能的)으로 있어서 어떤 경우에도 살려주세요 하고 살고 싶은 구원을 요청하는 것은 본능적인 절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인이 죽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사는가? 가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가 매우 중요하여 삶의 질에 따라서 생애 대한 욕구가 달라진다.

엘리야는 선지자로서 삶이 너무나도 힘들어 자신이 죽음을 호소하였다.

욥이라는 사람도 처음에는 부자이고 자녀도 십 남매나 되고 다복한 생활을, 하였지만, 그에게도 시험이 찾아와서 삶이 너무나도 고달프게 되었다. 몸에는 심한 병이 들었고 많은 재물은 하루아침에 무일(無一)푼이 되어버렸고 자식 십 남매는 모두 죽어 무자(無子)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살만한 의욕이 없어졌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간청하기를 이 썩을 육체(肉體) 밖에서 하나님을 뵙고 싶다고 하였다.

즉 죽음을 원했던 것이다. 이것을 보면 죽고 싶다. 살고 싶다는 여부는 그의 삶의 환경(環境)이 좌우(左右)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삶의 욕구가 강하여 하는 말이 “개똥에 굴러도 이 세상이 좋다”라고 하였다. 이는 죽기 싫다는 말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죽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로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동네 어르신을 만나서 “만세 수나 하세요” 하면 화내지 않고 고맙다고 하지만, “오늘이라도 세상을 떠나세요”라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이는 사람은 누구나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옛날 진시황제는 죽기 싫고 늙기 싫어서 불로초(不老草)를 구해오라고 하였다는 말이 있다.

모세는 말하기를 “우리의 평생이 일식(一息) 간에 대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건강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므두셀라인데 그는 969세를 살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70에서 80세라고 하였으니 평균 80세라고 해도 40년은 잠자야지 40년 동안 이런 일 저런 일 당하면 이만하면 살맛 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에 101세를 산 어느 대학 명예교수가 현 정권에 대하여 비판했다고 어느 변호사가 명예교수를 향하여서 하는 말이 “이래서 오래 사는 게 위험하다.”라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인간의 “적정 수명은 80세가 한도”라고 말하였다.

그 말을 한 변호사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수명을 논하였다고 보는 것보다는 정권을 비판하였다고 하는데 무게를 두고 노골적으로 현 정권을 비판한 명예교수를 향해서 오래 사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만약에 그 교수가 그와 같은 비판을 하지 아니하였다면 그 변호사는 시비(是非)를 걸 필요가 있겠는가? 전혀 없다고 본다.

적정 수명의 한도가 80이라는 논리를 펴는 그는 80을 더 살아서는 문제가 있다는 논리를 펴는 것 같은데 그런 논리라면 앞뒤가 맞지 않고 설득력도 약하다.

나이가 많아 100세가 넘어도 그의 정신은 반듯하여 30대보다도 더욱더 건설적이고 비전이 있다는 것이다.

100세가 되어도 더 살아야 할 분이 있고 30대가 못 되어도 지구를 떠났으면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살아야 하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남녀노소 빈부귀천 차별 없이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더 살아야 할 사람이 있고 2십-3십 대라도 지구를 떠나야 국가와 국민에게 이로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지도자로서 120세를 살았지만 죽을 때까지 안질도 좋았고 정신도 맑았으며 기력도 쇠하지 아니하였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설득력 없이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경솔한 처사이다.

그런 논리라면 그런 말을 한 변호사는 80세 적정 수명을 넘겨서 100세까지 산다면 어떤 처신을 취하겠는가? 그의 답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수명을 정치적인 사고로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유명한 명의(名醫)는 정말 오래오래 살면서 사람의 생명을 구했으면 하는 것이 모두의 바람이요 국민을 태평성대로 이끄는 정치인은 정말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이 정한 것이고 국가나 사회에 이익을 주는 사람은 누구나 오래오래 장수하여 그의 본분을 다했으면 하는 것이 사람들의 진정한 바람이다.

그런데 80세에 한계를 지어놓고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안목도 부족하고 시야도 좁다고 보아도 지나친 판단은 아니라고 본다.

나이가 많으면 그동안 살아오면 이것저것 경험한 것이 많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노인의 지혜를 배우고 젊은이들은 용기를 더 하여 서로 협력하여 사회나 국가발전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노인(老人)은 고물(故物)도 아니고 퇴물(退物)도 아니며 보물(寶物)이다. 그러므로 노인을 내다 버릴 쓰레기로 여기지 말고 존경(尊敬)의 대상으로 여기고 오래 살아온 경력 앞에 허리를 숙여야 한다.

성경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하였다. (레 19:32)

정치적인 비판을 했다고 해서 늙으면 위험이다느니 적정, 수명은 80이라느니 하는 말은 노인에 대한 존경심이나 공경심은 전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치(政治)가 사람을 예의(禮義) 없이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런 말을 하는 그의 직업은 변호사이다. 만약에 불효한 패륜아의 사건을 수임해서 법정에서 변호할 때 어떻게 변할지도 궁금한 사항이다.

최근에 학생 형제가 할머니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하여 할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칼로 살해한 그와 같은 사건을 맡았을 때 어떻게 변호할 것인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변호사는 누구라도 사건을 맡을 때 각가지 범죄로 연루된 사건을 맡아서 처리해야 하는데 사건을 변론할 때 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법과 원칙에 의해서 변호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래서 오래 사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속담에 “말은 남이 웃을 수 있는 말을 하고 행동은 남이 입을 다물 수 있는 행동을 해라”라고 하였다.

말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좌우, 한다. 이 말은 말 한마디에 그의 인격과 성공실패가 좌우된다는 말이다. 특히 변호사들은 말을 잘해야 한다. 직업 자체가 말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호사의 말은 누가 들어도 부정적으로 들리지 않고 긍정적으로 들여야 판사의 판단도 공정(公正)하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만약에 편파적이라면 이는 사후(死後)에도 문제가 될 것이다.

나이가 많아 “이래서 오래 사는 게 위험” (이래서라는 단어 속에는 정권을 비판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말과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적정 수명(壽命)은 80세가 한도(限度)”라는 말을 한 것으로 짐작이 가는데 자기가 한 말은 자기를 위해서라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자기도 시시각각(時時刻刻)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021-09-03 08:38:09


닉네임 :  비밀번호 :  자동등록방지 :    


번호
제 목
작성자
첨부
날짜
조회
7604
  책(冊)을 읽는 국민(國民) (의성신문 제718호)   쓴소리   -   2021-11-25   529
7603
  음주(飮酒)운전과 초보(初步)운전   쓴소리   -   2021-11-23   550
7602
  지원금(支援金)과 뇌물(賂物)의 차이   쓴소리   -   2021-11-20   531
7601
  국가(國家)는 몸이요 국민은 지체(肢體)라   쓴소리   -   2021-11-18   533
7600
  거짓말의 아비는 마귀(魔鬼)다. (시론)   쓴소리   -   2021-11-12   519
7599
  사상(思想)과 언어(言語)와 행동(行動)   쓴소리   -   2021-11-05   518
7598
  대통령(大統領)의 인격(人格)   쓴소리   -   2021-11-04   503
7597
  풍랑(風浪) 만난 배(船)   쓴소리   -   2021-11-02   513
7596
  두 가지 소경. 좁으나 넉넉한 구원 (1)   김주범   -   2021-10-28   496
7595
  정신(情神)머리와 버르장머리   쓴소리   -   2021-10-27   515
7594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대언자   -   2021-10-23   513
7593
  r기독교에서 당선 축하라는 말 타당한가?   쓴소리   -   2021-10-23   526
7592
  삼대욕망(三代慾望)을 이기는 비결은 절제(節制)뿐 (결론)   쓴소리   -   2021-10-22   519
7591
  삼대욕망(三代慾望)을 이기는 비결은 절제(節制)뿐 (하)   쓴소리   -   2021-10-22   490
7590
  삼대욕망(三代慾望)을 이기는 비결은 절제(節制)뿐 (상)   쓴소리   -   2021-10-22   510
7589
  교회(기독교) 개혁?   무릇돌   -   2021-10-11   516
7588
  교회개혁 어떻게 가능할까?   홍종국   -   2021-10-10   519
7587
  한국교회 CPR?   무릇돌   -   2021-10-03   587
7586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대언자   -   2021-10-02   565
7585
  사회(社會)가 원칙(原則)대로 돌아가고 있는가? (하)   쓴소리   -   2021-09-21   618
제목 내용 제목+내용 이름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