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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 사람을 협력자(協力者)로 대하라
 닉네임 : 쓴소리  2021-09-02 12:09:33   조회: 512   
아랫사람을 협력자(協力者)로 대하라



어느 고관(高官)의 부인이 하는 말이 “자기 남편이 일을 많이 해서 아랫사람들이 힘들다”라고 하였다.



어떤 가치관을 가졌길래 아직도 아랫사람이라는 표현(表現)을 할까? 아랫사람이란 단어 자체가 좋은 뜻으로 사용되는 게 아니다.



심하면 아랫것들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옛날 반상(班常) 제도가 없어 진지가 오래되었다.



반상계급(班常階級)이 존재할 때는 아랫사람이라고도 하지 아니하고 아랫것들이라고 하였다.



이는 사람의 신분을 벼슬이 있고 없고 돈이 많고 적고의 차이 때문에, 차별하여 일반 서민을 무시하여 인격적인 살인(殺人)에 버금가는 횡포와 만행이었다.



그렇다고 상하(上下)와 선후배(先後輩)를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옛적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예의를 잘 지키는 나라라고 하였다. 역사적으로 변해야 할 것이 변하지 아니하는 것도 진리가 아니고 변해서는 아니 될 것이 변하는 것도 진리는 아니다. 인간의 도리는 변해서는 아니 되고 좋지 못한 풍습은 변해야 발전하는 국가로 부상(浮上)할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을 노예나 종으로 사고팔아서 그들을 부리며 아랫것들이라는 명칭을 붙여서 사람을 금수(禽獸)와 같이 매매하는 악행들은 역사(歷史) 속에 영원히 파묻어야 한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악(惡)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라고 하였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말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이다. 이는 인격적으로 남녀노소 빈부귀천 차별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권세를 잡거나 부자가 되면 인격이 상승한 것과 같이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어 사람을 차별하여 자기를 돕는 자들도 아랫사람, 내지 아래, 것들이란 식의 신분으로 격하시켜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종과 소유물인 것과 같이 여차하면 물건 버리듯이 아니면 물건을 교환하듯이 대하는 못된 심리가 작용하여 두 얼굴의 인간으로 변모(變貌)게 된다.



“독불장군(獨不將軍)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혼자서는 절대로 장군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반드시 협조하는 사람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위치에 오른 것은 자신의 실력인 줄 알고 고자세를 취하여 아랫사람이라는 관념(觀念)을 가지고 인격적(人格的)으로 무시하는 것은, 배은망덕(背恩忘德)의 극치다. 아무리 자기 일을 돕는 직원이라고 해도 그의 도움은 받을 수는 있어도 그를 무시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받은 적이 없다.



자기를 협력하는 자리에서 사직(辭職)하고 그 자리를 떠나면 그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있을 때만 자신을 돕는 사람이기에 자신이 마음대로 무시하고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어도 상대는 속언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라고 하는 말과 같이 즉 아, 더, 매, 치 (아니, 꼽고, 더럽고, 치사, 해도) 참고 견디며 갖은 수모를 견디었지만, 사직한 다음에야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은 계급사회(階級社會)가 더욱더 심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같은 인격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권세와 지식과 재물이 있고 없고를 신분의 차별로 정하여 배운 자와 가진 자와 권력을 잡은 자와 권력 없는 자는 언제나 종이 아닌 종노릇을 하고 있다. 성경에는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전쟁에서 사투의 결과이지 일반적으로 배우고 못 배우고 가지고 못 가진 차별로 사람을 비인격적(非人格的)으로 대하라는 성경(聖經)은 없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라고 하였다. 어떤 직을 밭았던지 맡은 자들은 주장(主張)하는 자세보다 모범적인 언행(言行)으로 본(本)을 보이라는 것이다.



공부, 더 했다고 인권(人權)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부자라고 인권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며 권력을 잡았다고 그의 인권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인권은 그 무엇과도 상관없이 인권 자체일 뿐이다.



반대로 못 배워 무식하다고 인권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해서 인권이 없어진 것도 아니며 권력을 잡지 못했다고 인권이 소멸한 것도 아니다.



죄인(罪人)의 인권도 보호하는 마당에 가난하고 못 배워 권력이 없다고 해서 인권이 무시를 당하고 짓밟혀서야, 되겠는가? 이는 있어서도 아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같은 공무원인데 지위가 높고 급수가 높아서 계급(階級)이 낮은 공무원이 국가를 위하여 일하는 상관을 보필하는 위치에서 성실하게 보필하면 되는 것인데 급이 낮다고 비 오는 날 윗자리에 앉은 분을 위하여 인격적으로 모독을 받아, 가며 보필하는 것은 국가를 위하는 일도 아니고 국민을 위하는 일도 아니다.



공무원은 누구나 상하(上下)를 막론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급료를 국민의 세금으로 받고 있다.



그런데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일도 아닌데 인격적으로 상처를 받으며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을 위하여 수모를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은 왕정 정치를 하는 고려나 조선 왕조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에 법무부 차관과 그 직원의 문제로 지금이 조선왕조 시대냐 왕정 시대냐? 이래저래 말들이 많았다.



만약에 누가 시켜서 그 공무원이 그리하였다면 권위주의 고압적인 태도이고 반대로 협조하는 직원 스스로가 그리하였다면 이는 과잉 충성이고 아부성이 있는 행위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옛말에 “말을 타면 종(從) 두고 싶다”라는 말이 있는데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으려는 명예욕(名譽慾)에서 빚어질 가능성도 인간에게서는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아부하여 과잉 충성해서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인간의 본능도 배제할 수도 없다.



외국의 리더들도 우산을 들고 중대한 행사에 참석하고 스스로 우산을 들던지, 아니면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행사를 마치는 것을 보았다.



우리도 이제는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사고방식은 버리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국민을 위해 죽을 각오로 자신의 체면 위신 따위는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고 보필하는 직원은 자기 개인의 심부름꾼이 아니고 자기를 도와 협력하는 자라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며 또한,



협력하는 공무원도 상관을 도와 국가에 이익을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보필(輔弼)해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종교지도자로서 하는 말이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자신의 지위 아래 있는 자들의) 종이 된 것을 전파, 함이라”라고 하였다.



이는 자신의 지위(地位)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세우신 분을 위하여 자신의 지위 아래 있는 사람들의 종(從)이 된 것을 전파,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라고 하였다. 이는 개인의 종이 되지 말고 국가(國家)와 국민(國民)의 종(從)이 되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공무원으로 세운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세웠기 때문에, 자기 상관의 종이 아니고 국민의 심부름꾼이기 때문이다.



상관은 국민을 위하여, 섬기는 정신을 가져야 하고 협력자도 국민을 위하여 상관에게 협력자(協力者)가 된다는 정신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일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공무원은 권위주의(權威主義) 사상을 버리고 섬기는 정신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해야 할 것이다. 말로만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2021-09-02 12: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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