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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죽을까?(총신문학 수필 제9집 P 237-240)
 닉네임 : 쓴소리  2020-12-29 18:24:29   조회: 7284   
어떻게 죽을까? (수필) (총신문학제9집 P 237-240)

사람은 누구나 죽고 싶지 않지만, 생욕(生慾)과는 반대로 태어나면서부터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가 없다.

열차가 부산역에서 출발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종착역인 서울에 도착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과 같이 분명한 것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다.”

그러나 죽음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두렵고 슬픈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생 경험을 많이 한 솔로몬 왕은 말하기를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처럼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라고 하였다.

이는 죽음을 두려워할 일이 아니고 태어나서 사는 것 보다 죽는 것이 더욱 좋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을 무조건 두려워하고 싫어하기에 살려는 생욕 때문에 올바르게 살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그 이유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기를 “또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라”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죽음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죽음은 원향(原鄕)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본향(本鄕)으로 간다는 말이다.

즉 우리가 처음에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다시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돌아가기 전에 세상에서 사는 동안 부끄럽지 않게 고향에 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모세는 말하기를 “우리의 일생이 70이요 건강하면 80이라도 그러나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눈물뿐이라”라고 하였다.

그럼 제한된 수명의 기간을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고민하지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성경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하였다.

그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막연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만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죽기 전에 반드시 행할 성도의 도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몇 가지만 생각해보자 첫째는 영생을 목적으로 하고 예수를 믿자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은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이는 예수 믿는 목적이 영생이지 세상에 물질의 복이나 받고 건강의 복을 받는데, 목적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말하기를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이라”라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성경은“영생을 주시기로 작정 된 자는 다 믿더라”라고 하였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영생에 이르는 것이지 땅의 것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는 거룩하게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 거룩함이라”라고 하였다.

이는 영생을 목적으로 하고 예수를 믿는 성도는 세상 사람들보다 구별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과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라고 하였다.

이것이 성도로서 성도답게 사는 가장 유일한 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셋째는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성경은“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가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하였다.

죽기 전에는 이런저런 많은 일이 생기지만,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

그다음에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

바울은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이라”라고 하였다.

삶과 죽음이 무엇인가? 삶은 영혼과 육체가 공존하는 것을 삶이라고 하고 죽음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육체는 흙으로 지으시고 그 육체에 영혼을 불어넣어 인간의 삶이 시작되었다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육체는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다.

그런데 이 죽음은 세상에 모든 사람이 맞이하게 되어 있는데 남녀노소 빈부귀천 예외가 없다.

그러므로 죽음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죽을 준비를 철저하게 하여 죽음을 기다리면서 사는 죽음의 두려움을 초월한 욥과 같이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뵙겠다.”라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어차피 죽을 몸인데 사는 동안 신앙생활 잘하다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므로 기왕이면 백부 장같이 좋은 신앙을 가져서 주님으로부터“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는 칭찬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의 좋은 믿음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데반과 같이 세상을 떠날 때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자신을 돌로 치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성도가 죽을 바에야 그와 같이 멋지게 죽을 수 있도록 평소에 기도하고 신앙생활 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줄로 생각한다.

그리고 구약의 야곱과 같이 죽음 직전에 아들들에게 일일이 축복(祝福)하고 세상을 떠난다면 이는 매우 바람직한 죽음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바라는 바는 다윗과 같이 세상을 떠났으면 한다.

다윗은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니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라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라고 하였다.

이는 다윗의 마지막 생의 유언 적인 교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분은 죽으면서 자식들에게 “내가 죽거든 본교회 목사님이 자신의 장례예식 집례(執禮)를 하지 못하게 하라”라고 유언을 남겼고 어떤 분은 죽으면서 고함지르기를 “나는 예수를 모른다.”라고 하였으며 어떤 분은 죽으면서 “천국에서 전보가 왔다.”라고 하면서 기쁨으로 죽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죽기를 원하는가? 두말할 여지 없이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신앙생활 잘하는 성도가 되어 세상을

떠날 때 “내 영혼을 받아주옵소서”하고 기도하고 세상을 떠날, 때에 시편 말씀과 같이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라고 하였으니

우리의 죽음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여 사후에 생활이 영원한 영생 복락의 삶이 되도록 멋지게 죽으면 죽었지

가룟 유다나 사울 왕이나 아간과 같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곱게 살고 곱게 늙고 곱게 죽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2020-12-29 18: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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