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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조건이 아니다. 하 ( 칼럼 의성신문 제694호)
 닉네임 : 쓴소리  2020-11-26 15:16:29   조회: 7799   
행복(幸福)은 조건(條件)이 아니다. (하) (의성신문 칼럼 제694호)

사람의 욕망은 바다와 같아서 아무리 채우려고 몸부림을 쳐도 채울 수가 없는 것이 욕망의 속성이다.

1억만 있으면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1억이 있으면 10억 계속 단위가 높아지는데 현재 가진 것, 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은 조건이 아니고 마음과 생각으로 행복하다고 여기면 굶주리는 것보다 한 끼니의 밥을 먹는 것으로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는 걸인부자(乞人父子)가 마을 앞 교량 밑에서 생활하면서 아들이 아버지를 바라보고 하는 말이 “아버지 우리가 제일 행복한 사람인가 봅니다.” 하니 아버지가 아들에게 묻는다.

“이렇게 살면서 무엇이 그리도 행복하다는 말이냐?” 하니 아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농사 짓는 수고도 하지 않고 밥하는 수고도 아니하며 돈 벌려고 노력하지 아니하여도 저 마을의 사람들이 우리를 위하여 농사도 짓고 돈도 벌며

아침과 저녁으로 밥해 놓았을 때 우리는 쪽박만 가지고 가면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으니 우리가 가장, 행복하지요”라고 답을 하였다. 누가 이 아들의 행복론을 문제 삼을 것인가? 누구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거지 아들은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걸인 부자의 조건이 행복한 조건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부자는 그런 악조건에서도 행복한 조건을 찾아낸 것이 바로 거지 철학이라는 것이다.

얻어먹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들 나름대로 행복한 것이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행복 철학이다.

미국의 명문대학인 하버드대학교에서 행복의 조건에 대하여 “인생성장(人生成長)의 보고서에서” 행복에 관하여 생각해 볼 때는 언제일까? 자신이 행복한 순간에 행복이란 어떻게 우리에게 찾아올까를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즉, 행복하다고 느낄 때 더 이상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과(過)자 더 자가 붙으면 불행의 원인이라는 말이다.

오히려 자신이 불행하고 어려운 순간에 처했을 때 오히려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되지는 않을까? 행복의 조건은 인생의 고통을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렸다.

어느 시각장애인이 구걸(求乞)하면서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그와 같은 처지에서 무엇이 행복하다는 말이요”하고 물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비록 시각장애인이 되어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아 살지만 나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해주시는 분들은 마음속으로 “나는 저와 같이 시각장애인이 되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며 행복(幸福)하다.”라고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단다.

그래서 행복은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어떻게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좌우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행복을 자의(自意)로 판단하거나 단정 짓는 것은 오판(誤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현재도 장애를 가지고 생활에 불편은 느끼지만,

불행하다고 생각지 않고 긍지를 가지고 육체적으로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보다도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오체 불만족이라는 저서)

청각장애인은 생활에 불편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복지수(幸福指數)를 격하(格下)해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삼자가 볼 때는

그와 같이 악조건하에서 산다는 것이 매우 불행하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상대는 도리어 장애를 역이용하여 세상에 잡다한 말을 듣지 않고 신경을 쓰지 아니하여도

되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에 함부로 그의 행불행을 논하는 것은, 지나친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허유(許由)가 귀(耳)를 씻는 일 같은 것은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복은, 잘나가던 과거(過去)에 마음을 두지 말고. 또는 나 보다,

몇 단계 높은 좋은 조건을 가진 자에게 초점을 맞추면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스스로 행복지수를 낮추게 된다. 내 소유를 다 버리고 나면 이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한다.

한 벌의 입을 옷에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세상을 다 얻고 부러울 게 없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결국, 행복은 밖에서 찾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보릿고개 시절에는 초근목피(草根木皮)로도 배를 채울 수 없어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한 가운데 눈만 까막까막하는 세월에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굶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형편인데

속언에 “사람 죽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팥죽 들어오는 것만 생각한다.”라는 말은 여러모로, 해석이 가능하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는데 배고픔이 슬픔보다 앞서

속언에 “금강산 구경도 식후 경(食後景)이라”는 말은 아무리 좋은 경치라도 배고프면 소용없다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부모가 세상을 떠났어도 배고프니 슬픔보다는 먹을 수 있는 팥죽이 들어온다는데 관심이 더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배고프면 슬픔도 뒷전이고 구경도 뒷전이며 이념과 체제도 뒷전이다.

그리하여 도덕적인 잣대로 그럴 수 있느냐고 책망하고 훈계하는 것은 상대를 너무 이해하지 못한 처사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조건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상식을 초월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하버드 대학 총장 후보가 사표를 내고 지체장애인 둘 때문에 그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해서 총장 자리를 그만두고 지체장애인 돌봐주는 길을 택하였다.

이것이 그의 행복론이다. 의사가 환자를 고치는 것이 행복하고 환경미화원이 거리를 깨끗이 청소하여

많은 시민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대통령으로 욕먹는 것보다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은 조건이 아니고 마음과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속 결론)
2020-11-26 15: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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