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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뢰성(信賴性)이 떨어지는 사회(社會) (하) 의성신문 제 686호
 닉네임 : 쓴소리  2020-07-22 15:34:39   조회: 102   
신뢰성(信賴性)이 떨어지는 사회(社會) (하) 의성신문 제 686호

사회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 중에는 기생충 중에 거머리와 같은 사람도 있음을 간과(看過)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의 특징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것이다.

고대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라는 나라에서는(티베트) 사형 도구가 세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소가죽을 물에 담가두었다가 기온이 매우 높은 날에 사형수에게 소가죽을 감아서 햇빛 아래 세워두면 가죽이 마르면서

사람을 압사(壓死)하게 하는 방법이 있고 그다음에는 거머리를 사형수 몸 전체에 붙여서 피를 흡혈(吸血)하게 하여 과다 출혈로 죽게 하는 방법이 있으며 마지막은 천길만길 깊은 웅덩이에 던져 넣어 굶어 죽거나 질식해서 죽게 하는 방법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 거머리 사형법은 특이하다. 당장 큰 고통을 주는 것도, 아니고 서서히 피를 빼서 죽이는 잔인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같은 맥락에서 많은, 사람들의 피를 말려 죽이는 거머리 같은 인간들도 있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부인할 수 없다.

정의와 공정을 외치면서 남의 것을 가로채고 사회에서 소외당하여 올 데 갈데없는 고아나 노인들의 생활에 빨대를 꽂아 그들의 피를 빠는 거머리만도 못한 인생이 있다면 이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사람이라고 욕을 먹어도 항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 요직에 있으면서 국가건설과 국민의 복지향상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일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세금에 빨대를 꽂아 국민의 혈세를 빨아먹는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있다면 이는 거머리보다 못한 인간으로 취급하여 다시는 공직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고아원(孤兒院)과 양로원(養老院)을 국가의 보조금이나 국민의 후원금으로 운영하면서 운영자금에 빨대를 꽂아 흡입(吸入)하는 일이 있다면 이는 거머리보다 못한 인생이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미물의 기생충(寄生蟲)인 거머리는 생존의 수단으로 피를 흡입하지만, 그러나 사람을 죽일 목적과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형집행의 도구로 사용된 거머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간이라는 타의에 의해서 살인 도구로 이용당한 것뿐이다.


그러나 선행(善行)을 전제로 하여 악행(惡行)을 의도적으로 저질렀다면 이는 분명 거머리 보다, 못한 인간이 틀림없다.


그 이유는 사람은 도덕성과 양심이 있지만, 거머리는 기생충(寄生蟲)이기 때문에 도덕성이나 양심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거머리는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지만, 그러나 거머리는 의료용의 용도로도 사용이 된다는 점에서 볼 때 생각할 바가 많다.

이는 사람의 피만 빠는 것이 아니고 피를 빨아도 사람의 건강을 위하여 빤다는 점에서는 거머리를 욕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거머리 같은 인간은 사람의 허약한 점에 빨대를 꽂고 그 사람의 육체와 정신적으로 고통을 안겨주지만, 거머리의 유익한 성분은 혈액의 응고방지, 백혈구 활성화, 혈액순환 활성화. 혈전 용해작용, 혈소판 응집 억제, 세포분열 활성화, 혈전 용해작용, 혈류개선 작용, 그 외에도 유익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늦었지만,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정치권이나 법조계 사회 각 분야 공익(公益)을 앞세운 단체들 모두는 지금까지 거머리와 같이 약자의 피만 빨아왔다는 비판을 받은 일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개과천선하여 의료용으로 사용되는 거머리와 같이 인간을 위한 선한 도구로 쓰임을 받았으면 한다.


실수 없는 완전한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한번 실수는 병가(兵家)의 상사(常事)”라고 하였다. 이는 전쟁을 하다 보면 한 번의 실수는 늘 있는 일이라는 뜻으로, 일에는 실수나 실패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현 사회에서 거머리 같은 인간들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제이 건국과 같은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신뢰도를 측정한다면 모르기는 해도 최악의 수준일 것이다.


오죽하면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몰라도 부자간에 목욕탕에 가서 열탕에 먼저 들어간 아버지가 몸을 담그면서 하는 말이 “아 시원하다.

하니 아들이 그 말을 듣고 열탕에 풍덩 들어와 보니 뜨거우니까? 아들이 하는 말이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네”라고 했다는 것이다.

특유의 한국어 시원하다는 해석이 많은 유머라고 할지라도 자식이 아버지도 믿을 수 없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씁쓸하기만, 하다.

이 사회에 대한 불신은 하나둘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법조계에 대한 불신도 만만치 않다. 대법원판결이 잘못되었다고 재심을 청구하는 상황 그렇다면 당시의 판결을 한 사람이 일반인이 아니고 법의 전문가라면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따라서 법의 판결이 다르다는 말인데 이래서야 누가 법의 판결을 신뢰하겠는가?


그래서 유전 무죄(有錢無罪) 무전 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나오고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 유죄(無權 有罪)라는 말은 법조계의 법을 적용하는 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닐까? 생각하는 데 문제는 이런 말이 사회적으로 만연(蔓延)하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정치권(政治權)이나 법조계(法曹界)나 사회 전반적인 면에서 이전의 부정적인 불신을 걷어내도록 관계자들이 이성을 되찾아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같은 거머리지만, 피를 빠는 면에서는 부정적이지만, 의료용 거머리로 탈바꿈하면 인간의 건강을 위하여 반드시 유용한 기생충(寄生蟲)이 되듯 각계각층이 잃은 신뢰성을 다시 회복하여 제 이의 대한민국 건설에 모든 국민이 매진한다면 이보다 더욱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계속 결론)
2020-07-22 15: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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