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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뢰성(信賴性)이 떨어지는 사회(社會) (중) 의성신문 제685호
 닉네임 : 쓴소리  2020-07-08 20:36:01   조회: 260   
신뢰성(信賴性)이 떨어지는 사회(社會) (중) 의성신문 제685호

어느 사회나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백인종(白人種)과 황인종(黃人種) 그리고 흙인 종(黑人種)도 있다.

이는 피부색의 차이일 뿐이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인간성이 다르거나 양심과 인간 본질(本質)이 다르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사람 됨됨이는 피부 색깔에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피부의 색깔과는 관계없이 성격이 하나같지는 않다.

선량한 사람도 있고 포악한 사람도 있으며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도 있다. 이는 피부 색깔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서양을 초월하고 종(種)을 초월하여 개미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고 거미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으며 꿀벌과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개미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는 일하여 모으기만 하지 베풀며 살지는 아니한다.
이런 사람은 이 사회에 해(害)는 끼치지 않지만, 덕(德)이, 되는 인물도 아니고 평범하여 무해무덕(無害無德) 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거미와 같은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인권이나 이익이나 생각하지 아니하고 속언대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개똥철학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다.

거미의 특성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자신이 쳐놓은 줄에 걸린 곤충을 잡아먹고 사는 파렴치한 존재이다.

그것도 큰 날짐승은 해치지 못하고 힘없고 나약한 것들만 잡아먹는 치사(恥事)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사기꾼의 악질적인 행위와도 같은 것이다. 사기꾼은 거미와도 같아 자신이 쳐놓은 함정에 빠지기만 하면 꼼짝도 하지 못하도록 자기 사기의 도구의 덫으로 짓눌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묶어놓고속을 다 파먹는 무서운 존재이다.

​겉으로는 그 줄이 예술가(藝術家)의 작품(作品)같이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 줄에 걸리는 곤충은 거미의 밥이 되는 것같이

사기꾼에게 걸려든 사람은 끝내는 망(亡)하고 소중한 목숨까지 끊어버리는 비참한 비극의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겉만 보고는 그의 속 전부를 알 수 없다.

세계적인 부자이고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하여 록펠러재단까지 설립해서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그도 한때는 거미와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재벌의 횡포라는 오명과 악덕 기업의 대명사로 불리는 불, 명예(不名譽)를 않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지 아니하고 그를 피하고 가까이하지 아니하려고 하였다.

그의 단면(斷面)만 보면 그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내면과 외면이 다르다. 양의 탈을 쓰고 이리와 같이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철저하게 십일조를 바치면서 그의 악한 행위는 악마(惡魔)에 가까울 정도로 잔인한 일들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의 악행은 인간이 단죄할 일은 아니지만, 그의 악행에 대하여 미국의 전(前) 대통령 루스벨트가 록펠러를 향해 말하기를 “그 부를 갖고 얼마나 선행을 하든 상관없지만, 그 부를 쌓으려고 저지른 악행은 보상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아무리 “개(犬)같이 벌어 정승(政丞)같이 쓰라”는 말이 있지만, 목적이 선하면 방법도 선해야 한다는 말은 만고불변의 명언이다.

명분이 정당한 일을 한다고 하면 그 과정은 더욱 정당해야 한다.

아무리 명분과 목적이 선하다고 하지만, 시행하는 과정이 정당성을 잃고 정의(正義)롭지 못하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록펠러의 십일조 행위를 보면 십일조는 드렸지만, 성경대로 드리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목적이 선하면 방법도 선해야 앞뒤가 맞아야 그의 말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

성경에 이르기를 “창기(娼妓)가 번 돈과 개(犬)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라고 (신 23:18) 하였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뿌리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요한바 정의(正義)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마 23:23).

이는 성경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각종 예물과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드리기 전에 성경은 어떻게 드리라고 가르쳤는지부터 알고 내 생각대로 바치지 말고 성경 가르침의 방법대로 드려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선한 사업을 한다고 하는 단체들은 회계장부(會計帳簿)를 정확하게 정리하여 언제 어디에서나 감사(鑑査)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감사기관이 아니라 하더라도 후원자들이나 보조해주는 정부 기관에서 회계장부를 보자고 할 때는 영수증철과 함께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해놓는 것은 복지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상식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래야 그 단체가 신뢰성을 인정받고 앞으로도 의심 없이 후원과 보조해주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고 후원금이나 보조금을 신(神)의 이름이나 아니면 양심적(良心的)으로 떳떳하게 사용했다면 어떤 경우에도 당당하게 해명하고 설명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일반 가정주부도 가정 살림을 꾸려 갈 때도 철저하게 수입과 지출을 가계부에 적어 알뜰살뜰하게 살림살이를 사는데 하물며 후원을 받고 정부의 보조를 받는 기관에서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만약에 후원자들이나 보조, 기관에 투명한 회계장부를 내놓지 못하고 변명으로만 일관한다면

그 단체의 투명성에 신뢰성이 떨어져 후원자들은 후원금을 중지할 수 있는 위험성도 있고 보조, 기관에서 보조금을 중지하고 잘못 사용했다는 판단이 나올 때는 그동안의 보조금을 회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선한 사업이라 해도 투명성을 보여주는 것은 그 단체의 수명(壽命)을 연장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투명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 단체의 사업의 생명을 단축(短縮)하는 불행한 일이 생겨 신뢰성을 잃은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며 뒤늦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계속)
2020-07-08 20: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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