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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처럼 높은 요직(要職) 사양하는 미덕(美德)을 갖추라(크리스챤 탐임 제 376호)
 닉네임 : 쓴소리  2020-06-25 18:52:30   조회: 181   
예수처럼 높은 요직(要職) 사양하는 미덕(美德)을 갖추라(크리스챤 탐임 제 376호)




일반적으로 요직을 말하면 청와대, 국무총리실, 국가정보원, ,통일부, 국회, 국세청, 대한민국 경찰청,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검찰, 대한민국 소방청, 군대, 대한민국 해군, 외교부 교육부, 등등, 많은 요직부서가 있음은 국민 모두는 아는 것이다.
...

그런데 문제는 각, 요직(要職)마다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적임자가 그 자리를 맡아 능수능란(能手能爛)하게 일을 처리하느냐가 문제이다.




필자는 청와대 들어가 대통령과 같이 조찬(朝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평소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질문을 했다.




“대통령님 대통령 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 당선되었을 때 조선왕조 시대 같으면 1등 공신 2등 공신 같은 인물들이 있는데 이들을 배제(排除)하고




요직에 전문가를 앉혀서 국정을 수행하심이 옳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더니 대통령의 대답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라고 난처하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 이유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이것이 현실정치의 현주소다.




그래서 정부 요직에 능수능란한 인제가, 등용되는 것보다 대통령 주변에서 그 자리에 앉게 될 때까지 최고의 통치자에게 얼마나 협조했느냐 여하에 따라 요직의 수장이 되고 아니 되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 장래를 위한 것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 여하에 요직의 수장이 좌우된다는 말과 같아서 이해는 하지만, 매우 씁쓸함을 느꼈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국가 요직의 수장이 이런 식으로 최고 권력자에 대한 개인의 기여도에 따라 요직의 수장이 좌우된다면 기여도가 높은 개인은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 요직을 통하여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비극이라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예를 든다면 자동차가 고장이 났는데 자동차 수리에 대해서는




전혀 지식이 없는 사람을 자동차 정비공장 사장으로 앉힌 것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기여도에 따라서 보답한다는 차원에서 요직을 맡겼다면 국가적으로는 큰 손실이고 큰 불행이다.

인사만사(人事萬事)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일이 곧 모든 일이라는 뜻으로,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써야 모든 일이 잘 풀릴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인사권(人事權)자가 요직을 맡겨도 개인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거절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 이유는 무능한 자가 요직만 맡아서 수행할 능력이 없다면 이는 허수아비나 다를 바 없다.




즉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있는 자리인데 무능한 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그 자리는 있으나 마나 한 자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정말 국가를 위하는 충신(忠臣)이라면 요직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여도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과 같이 임금에게 버림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나라를 위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충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이순신은 백의종군에 상태에서도 온통 신경이 나라에 있었다.




그는 백의종군 도중에 수군이 일본의 꾀에 넘어가는 것을, 듣고서는 “우리나라에서 미더운 것은, 오직 수군뿐인데, 수군마저 이같이 희망이 없게 되었으니, 거듭 생각할수록 분하여 간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라고 말한다.




요직에 있으면서 역적(逆賊)과 같은 일을 하는 이X X 같은 자는 역사가 매국노(賣國奴)라고 낙인을 찍지 않는가? 이와 같을, 바에야 요직을 맡지 말고 사양함이 충신이 될 것이고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정치뿐만 아니고 기독교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세만 가지고 백성의 상처를 싸매고

각종 병을 고치며 먹을 것이 없는 빈 들에서 배불리 먹이는 능력이 있음을 백성들이 보고 그들 스스로가 예수그리스도를 억지로 임금으로 삼으려는 것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느니라”라고 하였다. (요 6:15)




이는 세상 정치적인 임금의 자리를 사양하는 미덕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세상 정치적인 왕이 아니고 영(靈)들 세계의 왕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이는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정치적인 일개 국가의 왕으로 권세나 부리고 부귀영화나 누리고 하는 임금 자리는 사양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세계적인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왕이 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 임금의 자리를 사양하는 미덕을 보이신 것이다. 세상에서는 높은 자리가 인기가 있고 매력도 있다.




그래서 그 자리를 지키려고 헤롯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해서 그 나라 2살 이하 모든 어린아이를 죽였다는 것은 무엇을 뜻, 하는지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그런 자리를 사양했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라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그보다 6개월 먼저 세상에 온 세례요한은 그의 인격이 너무나도 훌륭하여 사람들이 “당신이 메시아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아니라 나는 내 뒤에 오신 이가 메시아인데 나는 그의 신발 끈 매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라고 하였다.




이는 그의 인격을 말해주는 것이다. 자기가 아니면 아니 된다는 사고로 상대를 모함까지 하면서 총회 요직에 앉으려고 하는 설익은 인격자들은 세례요한에게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보다 상대를 낫게 여기는 미덕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2020-06-25 18: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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