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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참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닉네임 : 쓴소리  2020-06-13 17:00:46   조회: 231   
끝까지 참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속언에 “일시(一時)를 참으면 백날이 편하다”라고 하였는데 성질이 급하면 친구와 밥 먹고 밥값이나 먼저 내고 사소한 일에 먼저 주먹질이나 하여 치료비나 물어주지 자기에게 이익(利益)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본다.

인지위덕(忍之爲德)이라는 말은 참는 것이 덕(德)이나 득(得) 된다는 말이다.

독일의 시인 실러는 “위대한 정신은 조용히 인내한다.”라고 하였고 프랑스의 작가인 발자크는 “인내는 일을 지탱하는 하나의 자본이다.”라고 하였으며 영국의 작가인 오스틴은 “네 마음의 뜰에 인내를 심으라 그 뿌리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라고 하였다.

옛날 어느 마을에 여우가 살았다. 여우는 근처(近處) 농부의 집에 몰래 들어가 닭을 물어갔다.

농부는 인내심을 발휘하여 "오죽 배가 고팠으면, 그렇게 했겠느냐?" 생각하고 참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 또 여우가 나타나 이번에는 오리를 훔쳐 갔다.

그래도 농부는 한 번 더 참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여우가 또 찾아와서 또 닭을 물어가자 농부는 화(火)가 나서 덫을 놓고 마침내 여우를 잡았다.

농부는 그동안의 참아 준 것도 모르고 계속 해롭게 하는 것이 괘씸해서 그냥 죽이는 것이 분(憤)이 풀리지 않아 여우 꼬리에 짚을 묶어 불을 붙였다.

여우는 고통(苦痛)을 견디지 못하고 이리저리 발광(發狂)하는 모습을 보며 농부는 기분(氣分)이 좋았는데 그러나 여우가 뛰어간 곳은 농부가 1년 내내 땀 흘려 농사(農事)지은 밀밭이었다.

여우가 지날 때마다 불길이 번졌고 밀밭은 순식간(瞬息間)에 다 타버리고 말았다.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 "쥐를 잡으려다 장독 깬다."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草家三簡) 다 태운다"라는 속담(俗談)이 있다.

자신(自身)을 화(火)나게 한 상대(相對)에게 자제심(自制心)을 잃고 복수를 했을 때 그 행위(行位)로 인한 화가 결국(決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플라우투스는 “인내는 모든 곤란에 적용되는 처방이라”라고 하였고 타다는 “인내는 모든 일의 열쇠다. 달걀을 깨트린다고 병아리가 나오는 게 아니다.

품에 안고 기다려야 비로소 병아리가 나오는 법이다.”라고 하였으며 G 그린빌은 “인내는 무거운 짐을 지고 빨리 걸으면서도 말이 없는 나귀의 미덕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인내는 믿음의 보호자이고 화평의 유지자이며 사랑을 육성하는 자이고 겸손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약(弱)하고 완전(完全)하지 않기 때문에 충동(充動)을 억제(抑制)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러나 노(怒)한 감정(感情)으로 말하고 행동(行動)한다면 결국 그 책임(責任)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드워드아글스은 “인내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실패하고 끝나는 바로 그곳에서 성공하기 시작한다.”라고 하였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내할 수 있는 자는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라고 하였으며 새뮤얼 존슨은 “위대한 일들은 힘이 아니라 인내로 성취된다.

하루 세 시간을 힘차게 걷는 사람은 7년이 지나면 지구를 한 바퀴 돈 것과 같은 거리를 걷게 된다.”라고 하였다.

인내는 노력을 낳고 노력은, 성공을 낳는다는 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도 인내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다.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하였지만, 아브라함은 하루아침에 그 복을 받은 것이 아니고 오래 참아 받았다고 하였다.

인간은 응애 응애하고 울면서 태어나서 엄마 아빠라는 말을 배우까지 옹알이를 수없이 하고 난 후에 엄마 아빠를 부르게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라고 하였다.

신앙생활도 쉽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께서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네게 당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였다.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이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고 경건하게 신앙생활 하려고 하면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많은 박해를 받으리라”라고 하였다.


인내(忍耐)라는 말은 참고 견딘다는 말인데 '참을 인'(忍) 자를 보면 칼도(刀) 변에 마음심(心) 자인데 칼을 가슴에 꽂아도 견디어 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인내는 쉽지 아니한 문제이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하신 것이다. 참고 견딘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배탈 나서 설사하게 되면 그것을 참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 직전에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였으니 가능하다고 볼 수가 있다.


끝까지 견디는 것도 “사람은 할 수 없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라고 하신 주께서 함께 해주시면 가능하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다 각오로 끝까지 참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20-06-13 17: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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