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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등과 차별의 불가피성 (의성신문 제 679호)
 닉네임 : 쓴소리  2020-04-09 14:43:44   조회: 371   
평등(平等)과 차별(差別)의 불가피성(不可避性)(의성신문 제679호)

대한민국 헌법 제11조에는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 훈장(勳章) 등의 영전(榮轉)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미 굳어진 계층구조에서 모든 사람이 공평한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조항이다.

기회가 불평등하다면 모든 과정이 공정하고,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작은 규모의 문제부터 차근차근 짚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버릴 수 없듯이 절대적 평등(平等)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것은 없다고 보아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국민은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하였지만, 이는 절대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론과 실제가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차별(差別)이란 말은 차등이 있게 구별한다는 뜻인데 이는 불가피한 일이다.

사람의 신체적 구조를 보아도 불가피하게 차별할 수밖에 없다.

열 손가락이 모두 같을 수는 없는 것은 불가피성(不可避性)에 속한다.

사람마다 신장(身長)의 크기도 평등할 수 없는 것도 불가피성에 속하는 것이고 그리고 가난한 자와 부자가 존재하는 것도 불가피성에 속한다.

역사 이래로 모든 정치인과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평등하게 살도록 노력을 해왔지만,

불가피하게도 오늘까지 가난한 자와 부자의 간격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을 현실이 증명해 주고 있다.

그리하여 평등사상(平等思想)을 부르짖고 나타난 17세기의 로크, 홉스 등의 평등사상을 거쳐 19세기 마르크스, 엥겔스 등의 사회주의자들은

재산 평등, 나아가 사회적 자본의 평등을 철저하게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그런 사회적 기반들이 세워질 수 있으면 하는 희망 사항뿐이었지 불가피하게도 실현하지는 못하고 차별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존재,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속성(屬性)상으로 보아서 권력(權力)의 평등화나 상하(上下)의 평등화를 상상할 수 있는가? 예나 지금이나 불가피하게 차별하여왔다.

겨우 반상(班常) 제도는 없어졌으나 현대 반상(班常) 제도는 모양만 다를 뿐이지 내용은 같다고 보아야 한다.

옛날에는 양반이라는 제도 때문에 벼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노예처럼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돈이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양반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것을 법적인 제도로 막을 것인가? 불가피하게도 차별 아닌 차별로 나타나고 있으니 하늘이 땅에 붙지 아니하는 한 인간 본능의 욕구에 의한 문제라 불가능한 일인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하여 문화적 차원에서, 평등주의 이론을 오랫동안 발전시키려고 평등주의 철학에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좌파 자유 지상주의, 진보주의가 있으며,

그중 일부는 경제적 평등주의 사상을 주장함으로 많은 나라에서 지식인층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었지만,

그중 어떤 것 하나도 실제로 행해졌다고 한다면 논란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도 평등주의를 실현하려고 법을 고쳐서라도 해보겠다고 일부 정치권에서, 노력하는 데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여 실천해본 공산주의자들은 손을 들고 그 제도를 수정,

내지 포기하였고 현재도 공산주의를 실천하는 국가를 보아도 권력을 잡은 자들과 일반 국민과 생활의 차별은 하늘과 땅이다.

다시 말해서 평등하지 못한 것을 보면서도 그와 같은 제도를 실행에 옮기려는 것은 역사의식이 전혀 없고

공산주의가 실패하여 망한 이정표(里程標)를 보지 못한 허망한 발상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과거로 회항(回航)하기보다 새로운 발전과 더 나은 행복을 위해서 전진해야 한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差別禁止法)을 입법화하려고 하지 말고 더 나은 법을 개발하여 최소한 차별을 막아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개인의 사유재산을 사회에 되돌려주어 가난한 자들에게 도움을 준 부자들은 자신들 배만 부르게 먹고 마시고

흥청망청 사용하지 아니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하여 스스로 사회에 헌납(獻納)한다면 이는 매우 바람직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공산주의자들처럼 부자의 것을 강제적으로 빼앗아 나누어 준 것이 진정한 평등이 아니고 개개인 스스로가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불가피한 차별을 순리와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물리적(物理的)인 방법으로 막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과 어둠과 밝음이나 차별되는 것은 불가피성(不可避性)에 의하여 어떤 법과 제도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의 평등성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양심에 의하여 빈부귀천 차별 없이 평등하게 적용할 수 있지만,

불가피성에 의하여 차별은 도덕과 비도덕 진리와 비진리는 법과 제도와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역사(歷史) 속으로 후퇴(後退)한 구태의연(舊態依然)한 것을 무리하게 손보려는

억지(抑止)스러운 발상(發想)은 반드시 멈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차별받지 않도록 국가가 사회적 환경(社會的環境)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20-04-09 14: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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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삿갓 2020-04-11 13:27:39
차별해야 합니다.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은 차별하십니다. 지독하게도...
성별, 피부색, 인종, 국가, 장유유서, 나이, 장자와 차자, 가문,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 주인과 종....
요즘 마귀들이 포용, 권리, 평화, 연대 등을 내세워서 ..... 하나님이 돌로 쳐 죽이라고 명하신 동성애자를 포용하면 가슴이 넓은 사람으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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