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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손(後孫)을 위해 울라(의성신문 제678호)
 닉네임 : 쓴소리  2020-03-25 16:54:26   조회: 375   
후손(後孫)을 위해 울라(의성신문 제678호)

성경에 예수그리스도가 골고다로 끌려갈 때 큰 무리가 따라오면서 가슴을 치며 우는 것을 보고하는 말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고 하였다.



지금 여인들이 울고 있는 것은 장래 문제가 아니고 현재 예수그리스도가 당하는 고통과 그가 십자가에서 처형될 참상(慘狀)을 놓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우는 것을 보고 처형당할 자신의 딱한 처지와는 관계없이 “너희와 너희 자녀 장래를 위하여 울라”라고 하는 것은 현실, 문제가 아니고 미래문제를 내다 보고 예언적인 관점에서 엄중(嚴重)한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그리스도가 그렇게 말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현실을 외면한 말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



러나 예수는 울고 있는 그들의 처지를 몰라서 한 말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우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처형을 당하고 난 후에 그들과 그의 후손들이 받을 고통에 대하여 너무나도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지금부터 울라고 한 것이다.



지금 우는 것은 헤어지기 섭섭함과 동정 어린 눈물이지만, 자신과 자녀를 위하여 우는 것은 미래 장차 당할 고통을 위하여 진지하게 울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의 현실을 보면 자신과 자녀의 장래를 깊이 생각하며 처신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자신과 자녀들의 장래를 위하여 냉철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고 장래 자유와 평화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지 하면서 걱정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있을까?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민하지 아니할 수 없다.



현실을 냉정하게 지켜보면 불안한 요소들이 하나둘이 아니고 삶의 전반적인 면에서 걱정하지 아니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사회 곳곳에 널려 있다는 것이다.



경제, 정치 문화 전반적으로 삶의 주변에 걱정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곳곳에 널려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부모 된 자들이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울어야 할 일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덕과 윤리가 타락하여 상하 구별도 없고 동성애 등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수 없이 나타나고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자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에서 기성세대가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서 혼란스러움을 넘어서 불안과 고통을 더하는 일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같이 나타나는 현실을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불안하기만 하다.



그 외에도 자신과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서 걱정스러운 일들은 제한된 지면에 다 기록하기는 한계가 있다.



그중에 한 가지만, 자신과 후손들의 장래를 위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건국 때부터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라는 헌법에 보장된 체제하에서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하고 살았다.

그러나 1950년 6.25 동족상쟁(同族相爭)으로 잠시 공산주의 체험(體驗)하게 되었다.



경험(經驗)해 본 결과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살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아온 사람은 자유의 맛을 몰라서 속고 사는지는 모르지만, 자유를 만끽하고 살던 국민은 자유를 잃고서는 못사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공산주의 이론만 아는 사람들은 공산주의(共産主義) 이론(理論)과 실체(實體)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선호하고 맹종하는 사람들 때문에 공산주의를 체험한 사람들은 매우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도 숨길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맑은 공기(空氣)를 마음껏 마시며 살아온 사람은 그 공기(空氣)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자유를 누리며 살아온 사람은 자유의 고마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패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하였다. 이는 자유가 생명보다 더 소중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자유가 아니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자유가 인간에게는 필요하다는 말이다. 새장 안에서 주는 먹이만 먹는 새보다는 훨훨 자유롭게 동서남북으로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아 먹는 맛이 더 좋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새가 새장 안에 있으면 먹고사는 문제는 걱정 없겠지만, 활동공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면 죽음을 각오하고 사선(死線)을 넘어 탈북하겠는가? 그들이 하는 말이 “대한민국에 오니 천국(天國)에 온 것 같다”라고 하였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자유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나 중국을 보면 기독교 신앙을 용납하지도 아니하는 것은 물론 공산주의(共産主義)자들은 기독교인들을 적(敵)으로 보기 때문에 신앙의 자유는 꿈도 꿀 수 없다.

기독교인뿐만은 아니다. 모든 국민은 여행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꿈도 꿀 수 없는 제도하에서 산다고 생각해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소름 돋을 일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현직 대통을 향하여 가진 욕설을 퍼부어도 살아남지만, 만약 북한에서 그렇게 했다면 그는 지구를 떠나도 몇 번이나 떠났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에게 호소하지만,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는 자들은 후손이 좋은 나라에서 살기를 바라지마라 그대들의 후손이 좋은 나라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거든.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무엇이나 깊이 생각하고 심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후손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서라도 심사숙고하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선전 선동에 미혹되어 후손들까지 지옥으로 몰아넣는 어리석은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후손들에게 많은 전답(田畓)은 물려주지는 못하여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유(自由) 하나만 물려주고 죽는다면 절대로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과 후손을 위해서 반드시, 자유와 평화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내놓지, 아니하면 후손의 장래의 행복은 바라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2020-03-25 16: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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