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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닉네임 : 대언자  2020-03-23 12:37:08   조회: 396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요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3: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빛’(예수님)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이스라엘 백성들이=지금은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말세인 지금, 자신들의 마음과 행위가 말할 수 없을 만큼 악하므로), ‘빛’(생명의 말씀의 빛=진리=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보다 ‘어두움’(비진리=사람의 계명=교파의 교리와 세상 철학과, 세상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와, 예화집에서 뽑은 예화 설교 등)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기독교인들마다’) ‘빛’(생명의 말씀의 빛=예수님의 말씀=복음=성경말씀)을 ‘미워하여’(욕으로 여기고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성경말씀을 좇지 아니하고 사람의 계명과 자신의 생각을 좇아 신앙한 잘못된 행위가) ‘드러날까’(성경말씀에 의해서 드러날까=빛에 의해서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하나님의 말씀)를 좇는 자는 ‘빛’(예수님=말씀=지금은 성경말씀)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하나님의 뜻을 좇아=성경말씀을 좇아) ‘행한’(바르게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의 행위가 악하므로’(말세인 지금, 자신들의 마음과 행위가 말할 수 없을 만큼 악하므로), ‘그 행위가’(육신의 정욕과 사람의 계명을 좇아 신앙하는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가) ‘드러날 것을’(성경말씀에 의해서 드러날 것을=빛에 의해서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빛’(생명의 말씀의 빛=예수님의 말씀=복음=성경말씀)을 ‘미워하여’(욕으로 여기고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고, ‘어두움’(사람의 계명=교파의 교리와 세상 철학과, 세상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와, 예화집에서 뽑은 예화 설교 등)을 더 사랑하는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상고(詳考) = 자세히 참고함. 자세하게 검토함.
‘너희가’(믿는 자들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예수님에게=지금은 성경말씀으로)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예수님에게=지금은 성경말씀으로)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교회의 목사가 “우리는 믿음으로 이미 ‘구원’(영혼 구원)을 얻었다.”고 한다면, 그 말을 듣는 기독교인들은 과연 그 말이 성경과 맞는가 하고 〈성경에 있는 ‘영생’과 ‘구원’에 대한 말씀들을〉 한번 자세히 찾아보고, 깊이 상고하는 것이 신사적인(행17:11) 신앙인 것입니다.

이 성경이 곧 예수님에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가’(기독교인들이)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예수님에게=지금은 성경말씀으로=빛으로) 오기를 원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으로 오지 아니하는 기독교인들은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보다 ‘어두움’(사람의 계명=교파의 교리와 세상 철학과, 세상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와, 예화집에서 뽑은 예화 설교 등)을 더 사랑하여 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영생 얻기를 원하신다면 ‘예수님’(요1:1,14 말씀=지금은 성경말씀)에게 오시기 바랍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잠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주의 말씀과 주의 법은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말씀의 빛’인 것입니다.

요1:9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예수님’(예수님의 말씀=복음=신약)을 ‘참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도 빛이지만, ‘예수님의 말씀’(복음=신약)은 ‘참 빛’이며, ‘큰 빛’(사9:2), ‘기이한 빛’(벧전2:9)이라고 하였습니다.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고 하였는데, 이 말씀에서 ‘빛’은 ‘예수님의 말씀’(진리=성경말씀)을 뜻하며 ‘어두움’은 ‘사람의 계명’(다른 복음=비진리)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이 빛이면, ‘사람의 계명’(교파의 교리와 세상 철학과, 세상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와, 예화집에서 뽑은 예화 설교 등)은 어두움인 것이 확실하지 않습니까?

‘천주교의 교리’나 ‘장로교의 교리’(교파의 헌법)는 ‘하나님의 말씀’(법=성경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법이니, 다 없애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은 것입니다(계22:18-19.신4:2.갈1:7-9.갈3:15).

요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예수님의 말씀=복음=성경말씀)이 빛이니,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따르는 ‘자는’(제자들은)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육신의 정욕과 사람의 계명을 좇는 신앙을 하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빛)을 받았으니 ‘빛의 자녀’들이지만, 예수님을 배척하고 멸시한 ‘유대교인’(바리새인과 사두개인=교파의 교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빛)을 받지 아니하였으니 ‘어두움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유대교인들은 ‘모세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막7:1-13 사람의 계명=지금 교파의 교리와 같음)과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행15:1)고 주장하며, ‘예수님의 말씀’(복음=신약)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성경은 자신들의 마음에 맞는 몇 구절만 인용하고, ‘교파의 교리’(사람의 계명=‘장로들의 유전’과 같음)와 “믿음으로 이미 ‘구원’(영혼 구원)을 얻었다.”고 주장을 하니, 말세에 유대교인들의 역할을 하는 계통이 틀림없습니다.

사람의 계명을 좇아 신앙하는 기독교인들이 어두움에 속한 자들이며, 이들은 ‘더욱 악하여져서’(계22:11.딤후3:12-13), 말세에 성경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려고 애쓰는 소수의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역할을,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반드시 하게 할 것입니다.(살전2:14-16.요16:1-3.갈4:29)

어두움에 있던 유대교인들 중에는 예수님에게 와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듯이,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인들도 교파에서 나와서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따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며, 빛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23: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파송(派送) = 어떤 임무를 주어서 사람을 보냄. 파견.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아!=지금은 우리나라 서울에 있는 기독교의 지도자들과 기독교인들아!)
네게 ‘파송된 자’(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지금은 성경을 바르게 전하는 목사)들을 ‘돌로 치는 자여’(앞으로 반드시 매질하고, 잡아가두고 고문하는 날이 옵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예수님께서) ‘네 자녀를’(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을=지금은 우리나라 서울에 있는 기독교의 지도자들과 교인들을) ‘모으려’(성경말씀으로 인도하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예루살렘의 백성들이=지금은 서울에 있는 기독교의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내게’(예수님에게=성경말씀으로) 오는 것을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눅19:41-44.눅21:20-24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주후 70년과 130년경에 두 차례에 걸쳐 로마의 군대를 들어서 황폐하게 하였습니다).

약 이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셔서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부르셨지만,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예수님’(요1:1,14 말씀=성경말씀)에게 오는 것을 원치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죄 많고 부족한 저에게 ‘성경’(말씀=예수님)을 전하게 하여, 어두움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빛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부르고 계시지만, 기독교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성경’(말씀=예수님) 앞으로 오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이단의 고수』라고 입으로 비방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쪽 예루살렘의 교만한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버리시고, 그 당시 남쪽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천대받는 [북쪽 갈릴리의 겸손한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사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교만하여 예수님을 배척하고 멸시하며 ‘예수님의 말씀’(복음=성경말씀)을 받지 아니하니, 유대도민들에게 ‘이방의 갈릴리’라고 멸시를 당하던 갈릴리도의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제자들로 삼아서, ‘예수님의 말씀’(지금은 성경말씀)을 가르쳐 빛의 자녀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배척하고 멸시한 남쪽의 ‘유대도민’(예루살렘 백성도 포함)보다도, 유대도민에게 멸시를 받는 ‘북쪽 갈릴리도’의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을 부르신 것처럼, 말세인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에 마음이 교만한 우리나라 서울에 있는 교파의 총회장, 노회장, 목사, 장로, 신학박사와 같은 이런 기독교인들은 거의 불러서 쓰지를 않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에 미련하고 약하고, 재산도 없고, 세상 학문도 많이 배우지 못하고, 직업도 천하고, 멸시받는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순종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겸손한 기독교인들을 불러서 지혜와 각종 은사를 주시고 ‘말씀’(성경말씀)을 가르쳐서 들어 쓰십니다(고전1:26-29).

렘31:35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

하나님께서 ‘해’(예수님=말씀=성경말씀)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선지자)과 ‘별’(목사)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성경’(하나님의 말씀=햇빛)을 좇아 신앙하는 기독교인들은 ‘낮’(요11:9 예수님)에 속한 ‘빛의 자녀’들이지만, ‘성경’(하나님의 말씀=햇빛)은 모르고 ‘목사의 가르침’(사람의 계명=달빛과 별빛)을 무조건 좇는 기독교인들은 ‘밤’(마귀)에 속한 ‘어두움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어두움’(밤)에 속한 기독교인들은 ‘성경’(하나님의 말씀=햇빛)은 멀리하고, ‘사람들의 계명’(달빛과 별빛=교파의 교리와 세상 철학과, 세상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와, 예화집에서 뽑은 예화 설교 등)을 좋아합니다.

사30: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사30:10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선견(先見) =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앎.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패역한 백성이요, 하나님 앞에 ‘거짓말하는 자식이요’(요8:44 마귀의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성경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성경에 있는 앞으로 이 세상에 닥칠 두려운 일들을 예언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성경말씀을 정직하고 바르게 전하지) 말라, ‘부드러운’(아첨하는=듣기 좋은)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성경말씀이 아닌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렘5:30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렘5: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기괴(奇怪) = 이상야릇함.
‘이 땅에’(이스라엘 나라에=지금은 우리나라의 많은 교회 안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부흥 강사)들은 ‘거짓을 예언하며’(성경말씀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설교하며), ‘제사장’(목사)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성경말씀으로 교회를 다스리지 않고 목사라는 직분을 앞세워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성경말씀을 좇는 것보다 기독교 목사들의 말을 좇는 것이 신앙 생활하기가 쉽고 편하여 더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백 보좌 심판에서 예수님이 ‘유황 불못에 들어가라.’고 하는 그 날에는) ‘너희가’(기독교인들이) ‘어찌 하려느냐’(어찌 하려고 그렇게 하느냐).

이렇게 신앙하는 교인들이 ‘밤’(마귀)에 속한 ‘어두움의’(사람의 계명을 좇는) 자녀들입니다.

사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악을’(유대교인들의 신앙을=지금은 우리나라 교파의 신앙을) ‘선하다’(착하다=올바르다) 하며, ‘선을’(예수님과 제자들의 신앙을=지금은 성경을 좇는 신앙을) ‘악하다’(착하지 않다=올바르지 않다) 하며,
‘흑암’(사람의 계명=교파의 교리와 세상 철학과, 세상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와, 예화집에서 뽑은 예화 설교 등)으로 ‘광명을 삼으며’(빛으로 여기며=진리로 여기며), ‘광명으로’(하나님의 말씀을=성경을 바르게 전하는 말을) ‘흑암을 삼으며’(어두움으로 여기며=거짓말로 여기며),
‘쓴 것으로’(쑥물을=사람의 계명을) ‘단 것을 삼으며’(달게 받아들이며), ‘단 것으로’(하나님의 말씀을=성경을 바르게 전하는 말을) ‘쓴 것을 삼는’(욕으로 여기는), ‘그들은’(그런 신앙을 하는 기독교인들은) 화가 있을찐저.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신앙을 하였듯이, 말세인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또한 이런 신앙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고후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우리 복음’(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빛)이 ‘가리웠으면’(읽고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망하는’(지옥에 가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복음’(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이 가리웠는 자들이 많았으며,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기독교인들 중에도 ‘복음’(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이 가리운 자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은 ‘망하는 자들’(지옥에 가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악한 행위를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돌아와서,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에서 ‘예수님’(말씀=성경말씀) 앞으로 돌아온 사람들처럼 어두움에서 빛으로 돌아와, 빛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할렐루야!


전화: (042) 9 3 6 - 7 5 9 9
부족한 종 전대복 올림
2020-03-23 12: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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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삿갓 2020-04-11 13:22:57
종교는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현찰을 더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공의 보다는 공금 유용이나 공금 도적질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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