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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종말론은 명백한 사기다!
 닉네임 : 무릇돌  2020-03-02 21:16:38   조회: 165   
바울을 극복해야 예수가 보이고 개독교가 기독교로 되는데...


바울과 종말론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잠든 사람의 문제를 모르고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소망을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예수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이미 잠든 사람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말로 서로 위로하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 새번역>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씌어진 편지이다. 따라서 이 서신은 신약 정경(正經) 27권 중에서도 제일 처음에 기록된 문서인 셈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를 기록하였던 때는 그의 개종 후 이미 십 여 년이 지났지만 분명한 것은 바울은 예수의 재림이 그가 살아있을 동안에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비교적 그의 말년의 서신인 로마서에서도 분명한 그의 변함없는 신앙적 태도였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로마서 13장 11절, 새번역>


역사적 진실은 이것이니, 예수는 바울 생전에 재림하지 않았고 때문에 바울이 살아있을 동안에 예수의 재림이 임할 것이라는 기대와 장담은 ‘헛것’이 되었다. 그런데도 교회와 기독교는 바울의 종말론을 ‘여전히’ 붙잡고 있다. 참으로 정신지체의 몰골이 아닐 수 없다! 바울 이후의 정경들은 바울의 임박한 종말의 실패를 ‘가리기’ 위하여 ‘임마누엘 신학’(마태,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28:20, 새번역)과 ‘실현된 종말(심판)’(요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3:18, 새번역) 등으로 실패한 바울류의 종말론을 수정하고 교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기독교와 교회에서 바울류의 종말론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이는 스스로 영적 지체와 정신적 지체의 비정상임을 고백하는 꼴이다. 그래도 교회와 기독교는 종말론을 붙잡고 있겠다고 떼쓴다. 왜? 성경을 제대로 볼 눈이 없고(제대로 알고 싶지도 않고!) 그렇지 않으면 밥그릇 지키기에 손해가 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절대로 바울복음을 극복하려는 마가복음에게로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깨지고 심히 오염된 그들만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


‘종말론’의 기본적인 의미는 영어 ‘에스커톨로지(eschatology)’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단어는 ‘마지막’을 의미하는 에스커토스(eschatos)와 ‘가르침’을 의미하는 로고스(logos)의 합성어로 ‘마지막에 관한 가르침’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종말론은 인간 존재의 그릇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하나의 시각이다...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유추할 수 있다. 예수가 자신을 종말론적인 인물로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추종자들은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후, 그를 종말에 등장한 메시아로 보았다. ‘하느님의 나라’라는 개념은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에서 예수 가르침의 핵심이다. 예수는 비유를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고,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선포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느님의 나라 선포는 당시 유대인들의 종말론과 현저하게 달라 마찰을 빚었다. 신약성서 중 복음서들은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으나, 그것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찾아볼 수 없다.


유대교에서 ‘나라’라고 해석되는 용어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통치’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라는 번역보다는 ‘하느님의 통치’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래 의미에 가깝다. 예수가 활동하던 당시 유대교에서 신이 곧 활동을 계시(啓示)하여 그의 백성을 구원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예수는 복음서 여러 곳에서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를 전달하는 자로 묘사된다. 동시에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했다는 구절들도 등장한다. 서로 상충되는 내용 같아 보이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의 도래로 시작되었고, 가까운 미래에 완성될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예수의 이런 종말론적인 생각이 독특한 것은 아니다. 같은 시대 문헌인 쿰란 사본에서도 임박한 종말론을 선포한다.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를 ‘메시아’로 보았다. 예수는 유대교에서 사용하는 메시아의 범주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후 그리스도교의 근간을 세웠던 바울(Paul)은 예수를 지칭하여, ‘메시아’라는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크리스토스’라고 불렀다. ‘크리스토스’는 예수의 이름이 되었다. 바울에겐 예수가 바로 메시아이다. ‘메시아’라는 용어만큼 종말론적인 의미가 담긴 명칭은 ‘사람의 아들’이란 용어이다. 이 명칭은 예수가 자신을 스스로 지칭할 때 사용한 용어이다. ‘사람의 아들’이란 명칭은 복음서에만 주로 등장하다. ‘사람의 아들’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곳은 신약성서가 아니라 구약성서 『다니엘서』이다.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이 용어는 묵시문학에 등장하는 종말론적인 용어이다. 예수가 사용하던 아람어에서 ‘사람의 아들’이란 용어는 말하는 사람을 낮추는 용어로도 사용되지만, 『다니엘서』 7장 13절에서는 분명 천상의 구원자이다.


그리스도교 종말론에 관한 신학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은 바울이다. 바울은 묵시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데살로니카 전서(Thessalonica 前書)」 1장 9~10절에 “그들은 우리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어떠한 영접을 받았는지,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느님을 섬기는지,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그분의 아들, 곧 장차 닥쳐올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다리는지를 퍼뜨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유대교의 이원론적 종말론을 받아들였다. 시간적인 이원론, 즉 ‘이 세대’와 ‘다가올 세대’는 공간적인 이원론, 즉 ‘이 세상’, ‘저 세상’과 일치한다. 바울이 유대교의 이원론적 종말론을 모두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는 예수의 부활로 이미 미래의 저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믿었다. 예수의 부활은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의로운 자들이 부활할 첫 신호라고 믿었다. 유대 종말론의 엄격한 구분이 예수 사건을 통해 무마되거나 흐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예수 부활과 종말 사이의 ‘파루시아(parousia)’ 안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바울은 ‘주의 날’이라는 유대교의 종말론적 용어를 ‘예수 그리스도의 날’로 대치하여 유대교의 신 중심 종말론을 예수 중심으로 전환시켰다.


배철현(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실패가 입증된 바울류의 종말론은 버려라!

그런 종말론은 거짓이고 사기다!

언제까지 사기를 치려느냐?



[출처] 그런 종말론은 사기다!|작성자 무릇돌
2020-03-02 21: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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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2020-03-04 17:52:55
어찌 이름조차 괴이한 삿갓 쓴 깃이여!
그대도 종말론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쉰천지 그늘에서 쉰 물을 먹은 자이냐?
제법 먹사들 하는 소리 비슷하게 내는구나.
그것도 쉰천지 먹사같은...
종말론 운운하는 자는
쉰천지나 아닌 쉰천지나
도찐 개찐이니라!
정상적인 신학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한 촌 것이
바울의 신학과 예수의 신학을 알 턱이 있겠나?
너의 정체를 있는 사실대로 보이면
나 또한 그리할 수도 있느니라.
무슨 삿갓이 깃씨의 삿갓이더냐?
이 흐리멍덩구리한 분아...
무릇돌 2020-03-04 10:48:38
다른 이를 무식이라는 그 무식으로 재단하는
어린 백성이여!
김삿갓도 아니고 깃삿갓이라는
괴이한 너의 이름의 정체는
너 스스로 어둠의 자식이며 우상숭배자의 하나임을
스스로 고백하려 하는구나!

가령 하나님은 전능하다는 믿음과
하나님은 온전히 자비로우시다는 믿음은
서로 모순되며...[존 캅, 예수의 아바 하나님]

너의 그 오염된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

너는 네가 만들어(전해 들어) 믿는
하나님과 기독교에 세뇌되어
옳고 그름을 분별할 능력을 이미...

아느냐?

공부 좀 하거라!
하기야 공부할 머리가 있겠냐마는...
깃삿갓 2020-03-03 15:51:07
이성과 철학의 모든 논리는 거짓이고 사기다.
세상의 통치자가 심어 놓은 누룩이 펴졌다. 무교병을 먹어야제..
인문주의와 르네상스의 동이 튼 그날에 인간은 하나님을 버렸다.
사람이 만물의 근본이다. 라는 데카르트의 사기술은 인류를 타락시키고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rple 라는 유명 정치인의 언어 마술은
정치에서는 그럴싸 하나 하나님을 배신했다.

종말론을 믿지 못하는 자는 창조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을 재단하는 무식한 .... 지혜의 여신의 계시를 따라...
무식하고 무능한 인간 이성의 나약함이여...
지옥이 기다린다. 심판이 기다린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가마에서 사우나를 즐기거라.
신학이라는 무식한 .... 고등비평을 하면서 인생들은 죄다 고등어가 되었다.
신학을 배우면 하나님을 배신한다. 신학적 꼴깝 아닌가???
눈먼 선지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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