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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장 난 나침반(羅針盤)
 닉네임 : 쓴소리  2020-01-12 16:07:26   조회: 236   
고장 난 나침반(羅針盤)

나침반의 생명은 동서남북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데 있다.

즉 방향을 제대로 가리키지 아니하는 나침반은 어디에도 쓸모없는 폐품(廢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폐품이 군인들 전장에서 사용하는 군수품(軍需品)으로 전투부대에 보급(補給)이 되었다면
군인의 생명을 위험으로 몰아넣고 국가 안보에 큰 구멍이 뚫리고 나아가서는 나라가 적의 손에 들어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 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가를 위한 정치인들은 명석한 두뇌로 부강국가로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국가를 위해서 일하겠다는 정치인이 정치에 대한 철학(哲學)도 없고 국가가 흥(興)하는 방향도 잡지 못하고 우선 정치인이 되어 세비나 받고

특권이나 누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이는 처음부터 국가를 위한 정치인 자격이 전무(全無)한 자격 없는 정치인으로 보아야 한다.

정치는 잔머리 굴려서 개인의 부귀영화나 누리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림”이라는 말의 뜻과 같이 국가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치겠다는 각오도 없이

개인과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출세욕에 사로잡혀 정치에 뛰어들었다면 이는 자신도 망하고 국가도 망치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인은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로 배합된 세금으로 먹고 입고 쓰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함량 미달의 정신을 가진 자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국가를 위해서 일하려면 우선 국가의 헌법과 원칙에 의하여 자신이 맡은 일에 목숨을 걸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정치인의 사명이다.

정치인은 국민 위에 군림하면 이는 폭군(暴君)이 되고 국민을 위하여 희생하고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 이는 성군(聖君)이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국민도 법과 원칙에 의하여 자기의 목숨을 국민과 나라를 위하여 바치겠다는 이와 같은 성군에게 대항하는 것은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역적(逆賊)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치자를 보필하여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보좌관들도 그 책임이 막중하다.

보좌관이 간신(姦臣)이 되어 국가의 최고의 통치자를 제대로 보필하지 않고 선장(船長)이 국가라는 배를 운전할 때

다른 방향으로 가면 목숨 걸고 선장이 항로를 이탈한 방향에서 바로 잡아 주어야 할 의무가 항해사(航海士)와 같은 선장의 조력자가 바로 잡아야 한다.

음주한 선장이 선박의 방향을 이탈하여 엉뚱한 데로 배를 몰고 가는 것을 보고도 아부성이나

간신과 같은 역할을 하여 국가라는 배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갈 때는 목숨을 걸고라도 바른 방향으로 돌리도록 건의하고 쓴소리를 해야 한다.

항해하는 선장이나 선장의 조력자인 항해사는 방향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동서남북(東西南北)을 분간하여 안전하게 항해를 하는데

만약 나침반이 고장이라든지 불량품이라 사용 불가라는 판단이 났을 때는 기존 나침반은 버리든가 아니면 고장 수리(修理)하든가 아니면 폐기(廢棄)처분을 하고 새것으로 바꾸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고잔 난 나침반이 문제가 아니라 선박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명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선박에 비하면 나침반 하나쯤은 무가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가의 최고의 통치자가 혼자서는 국정을 운영할 수 없기에 각 장관과 보좌관들의 도움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는데 최고 통치자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통치자가 단독 결정하는 것도 국무회의를 거쳐야 하고 큰일은 국회 허락을 받고 해야 하는 것은 무도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 보좌관이나 비서관들이 그 정책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는 위험부담이 크고 특히 헌법에 맞지 않는 정책이라면 최고의 지도자를

보좌하는 자들이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
정치인의 직언과 쓴소리는 나라를 발전시키는 근본이라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소신이 없이는 간신처럼 아부나 떨고 권력에 빌붙어서 안일하게 부귀영화나 누리며 살겠다는

안일 무사주의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뚜렷한 소신이나 철학이 있는 정치인의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 왕조시대도 소신이 뚜렷한 정치인들은 목숨을 걸고 상소를 왕에게 올린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불이 났는데 소방관이 되어 불구경만 하고 있었다면 이는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옛말에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고 그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소신껏 쓴소리하는 것이 어쩌면 그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고 심하면 목숨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
다.
그러므로 정치인이 된 것은 최고 권력자의 시녀 노(侍女)릇이나 하려고 뛰어든 것이 아니고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정신으로 정치를 택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최고의 권력자를 도와서 법과 원칙에 의하여 봉사해야지 소신도 없이 잘 길들은 개와 같이 주인을 위하여 죽는, 시늉까지 하는 개(犬)의 성격을 가진 자는 정치권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율곡은 선조의 잘못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였는데 선조는 그래도 율곡을 대사간에 임명했지만, 율곡은 곧바로 사직 의사를 밝혔다.

선조는 그간 여러 차례 율곡을 요직에 등용했지만 정작 그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임금이 자신의 간언을 들을 생각이 없으니 사직하는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면 다시는 자신에게 출사하라고 명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율곡의 반응에 선조는 그날로 임명을 철회하고 율곡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라고 하였을 때 율곡은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국정이 혼란한 이유는 다름 아닌 선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라고 쓴소리를 했다고 하였다.

조선 명종 때 단성현감인 남명 조식(曺植)은 또다시 벼슬을 사직하며 대신 한 통의 상소를 왕에게 올렸다.

상소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직을 알리는 상소에서 왕의 국정 전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남명 조식(曺植)의 나이 55세가 되던 해이다.

“전하의 국사가 이미 잘못되고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하여 천의(天意)가 이미 떠나갔고 인심(人心)도 이미 떠났습니다.

외직의 신하들은 백성들을 갉아먹기를 마치 늑대가 들판에서 날뛰는 듯하고, 있습니다.”라는 쓴소리 상소를 올렸다.

조선왕조 시대에 권력에 연연하지 아니하고 목숨을 걸고 쓴소리를 했다는 점에서 당시 정치인들의
소신이 부럽다.
속언에 “참새가 죽어도 짹짹하고 죽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권좌에서 쫓겨나도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쓴소리 한번 하고 물러나는 소신이 뚜렷한 정치인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 고장 난 나침반(羅針盤)을 보고도 고장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배를 물속으로 가라앉히거나 파선하게 두는 수수방관(袖手傍觀) 죄가 될 것이다.
2020-01-12 1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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