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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왜 우셨고 지금은 왜 우실까?
 닉네임 : 쓴소리  2019-12-22 15:28:51   조회: 70   
예수께서 왜 우셨고 지금은 왜 우실까?

예수께서는 웃으셨다는 말씀은 없고 우셨다는 말씀은 있다.

한번은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것을 보시고 우셨고, 그리고 나사로 죽었을 때 우셨으며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우신 것이다.

여기서 보면 예루살렘이 망할 것을 보시고 우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제자들까지도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주님을

정치적인 왕으로 알고 억지로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기 때문에 답답하셔서 우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라고 하니

헤롯왕이 듣고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게 되지는 아니할지 예수를 죽이려고 간악한 마음을 먹고 동방박사들에게 하는 말이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라고 하였으나 박사들은 꿈에 지시를 받았는데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헤롯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헤롯왕은 그때를 기준으로 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다.”라고 하였다.

헤롯은 예수가 전 세계의 평화의 왕인지는 전혀 모르고 작은 이스라엘에 국한하여 정치적인 왕인 줄로 알고 독재자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예수를 죽이지 못한 화풀이로 죄도 없는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모조리 죽였으니 헤롯을 보아 정치 세계 독재자의 음모가 얼마나 잔인한가를 똑똑하게 알게 되었다.

독재자는 자기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그의 잔인성(殘忍性)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 이유는 독재자의 사악한 근성(根性)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정적에 대해서는 잔인하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은 여전하다. 그래서 정치는 잔인하고 피도 눈물도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기색만 보이면 처자식도 인정사정없이 죽여버리는 것이 독재자의 잔인함이다.

자신의, 아들까지 뒤주에 가두고 죽게 하는 것이 정치 권력의 속성이다.

그래서 정치를 하려면 거짓말부터 배우고 잔인성이 있어서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표독한 마음이 없이는 정치인이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기네스북에 보라 중국 어느 주석은 6, 천만 명의 목숨을 살해한 천인공노할 정치인도 있음을 보았다.


평화의 왕으로서 세상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정치적인 왕으로 알고 그를 죽이려는 계획이 빗나가자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모두 죽이는 것이 독재자의 만행이다.

그 자리가 무엇이길래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독재자의 만행을 위하여 주님은 우신 것이다.

지금도 평화를 외치는 자들이 세계 곳곳에 많다.

그러나 평화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면서 말로는 평화를 부르짖는 위선자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도 울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인권(人權)을 외치는 자들이 인권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인권을 짓밟아버리는 행위는 주님을 또다시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입만 열면 진실을 위해 산다고 하는 자들이 진실은 고사하고 거짓투성이고 사기에 가깝게 행동하는 이런 인물들을 위하여 주님은 지금도 울고 계실 것이다.

기독교인도 입만 열면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이며 영생의 종교라고 하는 자들이 실질적으로는 부활도 믿지 않고 영생도 믿지 아니하는

기독교인과 목사, 장로들 때문에 주님은 지금도 울고 계신다. 어쩌다가 기독교가 이렇게 되었는가? 그러니 주님은 울지 아니할 수 없다.

현대판 가룟 유다는 곳곳에 기생하며 가난한 자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위선자들, 대문에 주님은 울고 계신다.

겉으로는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그 과정에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위선자들 때문에 주님은 지금도 울고 계신다.

연합집회를 유치하면서 집회, 목적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이런 자들 때문에 주님은 울고 계신다.

겉으로는 교회를 위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가룟 유다와 같은 자들 때문에 주님은 지금도 울고 계신다.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고 있지만, 속으로는 이리의 행동을 하고 있으니 주님이 어찌 기뻐하시겠는가?

겉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사기나 치고 속여서 자기 이익이나 챙기는 이중인격자들을 보시고 주님이 어찌 기뻐하시겠는가?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가 좋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사회주의를 돕는 국가와 성도들을 기만하는 이중인격자들을 보시고 어찌 주님은 울지 않고 계실까?

우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사회주의 정치 속성은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기독교 지도자가 그런 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주님의 원수인 적그리스도를 찬양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런 자들을 보시고 주님은 울지 않겠는가? 당연히 울고 계실 것이다.

오늘의 목회자들은 공적만 내세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라고 고 자신 있게 말하였으나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하였다.

성도 수십만 명 모았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예배당 웅장하게 건축했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며 교단장과 정치부 재판부 부장

모든 직책을 다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맡은 자가 얼만 진실하게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불행하게도 그와 같은 지위를 가지고 주님을 울게 일했다면 이는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위하여 울라”라고 하셨으니 지금부터 주님께서 웃으실 수 있도록 우리가 애통하며 회개하면서 통곡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인생의 본분이요 기독교인의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울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오늘의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9-12-22 15: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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