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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醫師)와 목사(牧師)
 닉네임 : 쓴소리  2019-12-10 19:30:15   조회: 1843   
의사(醫師)와 목사(牧師)

의사의 사명은 병든 사람을 만나서 그의 병이 무엇이며 어디서 발병하였는지 근원을 밝혀내는 진단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며 처방과 치료를 통해서 한 생명을 살려내는 데 있다.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의사가 환자를 살리기 위하여 상처를 붕대로 감고 때로는 주사를 놓고 급한 응급환자가 들어오면 옷에 피를 묻히며 환자 생명만 생각하고 모든 조치를 다 취한다.

그래도 환자가 위급해지면 가슴을 누르며 응급처치의 하나로 인공호흡을 하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환자의 호흡이 돌아오지 아니하고 끝내 숨을 거두면 자신의 의술의 한계점을 탓하며 한 생명을 살리지 못한 죄책감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인(故人)의, 대한, 미안함과 유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어 몸 둘 바를 알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주변 사람이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이다.

이는 생명을 다루는 의사이기 때문에 그렇다. 의사가 아닌 사람은 의사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때로는 의사가 술 취한 사람에게 얻어맞기도 하고 불만을 품은 환자나 가족에게 봉변을 당할 때도 있고 심하면 생명을 위협받고 세상을 떠나는 일까지도 벌어지고 있다.

물론 그와, 같은 경우는 지극히 드물지만, 그러나 요즘은 그런 불상사가 자주 일어나 의사들이 마음 놓고 진료를, 못하겠다는 호소도 하기도 한다.

물론 병원을 경영하는 병원 당국에서는 무리한 진료비를 청구할 수도 있겠지만 의사의 사명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고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기 때문에

돈과는 별개의 문제로 의사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모를 리가 없다. 그들은 환자를 돈으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

환자를 대할 때는 생명과 치료만을 생각하는 것이 의사의 정신일 것이다. 물론 의료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고의로 의료사고를 내는 일은 없다고 본다. 의료사고는 날 수 있다.

문제는 의사의 양심에 그 사고를 인정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목사는 의사만큼 한 성도의 영혼에 대한 열정이 있는가에 대하여 자문자답해 볼 일이다.

다시 말해서 성도의 영혼에 대한 애착심과 자신에게 맡겨진 성도의 영혼을 위하여 얼마나 애쓰고 있느냐는 것이다.

의사가 병자의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서 치료하는 일은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전문, 분야다.

성도의 영혼을 보살피는 것도 목사의 전문, 분야다.

그러므로 의사는 응급환자가 들어오면 자다가도 병원으로 달려와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한 생명을 위하여 자신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의사가 월급이나 받고 시간만, 때우기 위하여 일을, 한다면 책임감이 없기에 적당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는 생명을 살리는 전문적인 의술을 지니고 있기에 직무유기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생명을 적당하게 다룰 수도 없다. 혼신을, 다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한 생명을 살리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환자는 의사를 불신해서도 아니 되지만 그를 해롭게 하는 것은 더욱 아니 된다.

그리고 의사도 자신의 사명을 낭만(浪漫)주의로 생각해서는 더욱 아니 된다는 것이다.

옛날 궁궐 전의는 사람을 살려내지 못하면 목숨까지도 잃는 일이,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의사가 최선을 다하여 환자의 생명을 돌보지, 아니하면

자신의 생명도 위태롭다는 의식을 가지고 환자를 대한, 다면 더욱 효과적인 치료가 될 것이다.

목회자도 마찬가지다. 자기에게 맡겨진 성도의 한 영혼을 위하여 목자의 심정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목자는 한 마리의 양을 위해서는 목숨도 버린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영혼을 사랑하는 면에서는 의사보다는 더욱 잔인한 면도 있어야 한다.

의사는 환자를 수술할 때는 마취제를 사용하여 아픈 줄 모르게 칼을 대지만, 목사는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는 때로는 직설적으로 가슴이 아프도록 책망하고 회개를 외칠 때가 있다.

이는 마취제도 없다.

그러므로 칼로 가슴을 찢는 것보다 더욱더 아플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다.

영혼이 죽음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 책망하지 아니한다면 이는 결국 한 영혼이 죽는 것을 보고도 방관하는 죄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요나 한 사람의 영혼과 그의 사명을 위하여 풍랑과 파도로 징계하여 회개시켜 니느웨 성민 12만 명의 생명을 살리시는 역사를 하였다.

목사는 진실해야 하고 자기를 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성도를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고 자기와 가까이하지 않고 하나님과 가까이하도록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목사는 의사보다도 영혼의 생명을 더욱 사랑하여 한 영혼을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9-12-10 19: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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