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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平和)는 강력(强力)한 국력(國力)이 우선이다.
 닉네임 : 쓴소리  2019-06-16 06:42:32   조회: 331   
평화(平和)는 강력(强力)한 국력(國力)이 우선이다.

평화라는 말은 여러 가지 생활 현상에 대하여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가장 중대한 의의를, 갖는 것은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과 평화의 대립에 관한 문제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평화는 국가의 정책 수행을 위해 무력 수단이 사용되지 않고, 여러 민족 여러 국가 사이에 전쟁이 없는 상태이다.

평화에 대한 바람은 이미 먼 고대로부터 표현되어왔고 이는 사람들이 서로 생활을 즐기고, 무력 항쟁이 없는 상태를 묘사한 낙원을 진정한 평화라는 것이다. 전쟁보다 평화가 훨씬 좋은 단어이다.

이는 듣기도 좋고 살기도 좋은 환경이 되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평화를 마다하겠는가? 만약 평화를 싫어하고 전쟁을 원하는 나라와 민족이 있다면 이는 정상적인 국가와 민족이 아니고 지구에서 없어져야 할 나라와 민족이다.

평화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설적(逆說的)인 진리(眞理)라는 말이 있는데 언뜻 보기에는 진리가 아닌 것 같고, 논리적으로 볼 때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진리인 것을 역설적이라고 한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을 피해야 평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하고 싸워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라고 하였다.

검(劍)이 무엇인가? 검은 전쟁과 싸움의 도구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려고 오셨다는 말이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은 전쟁과 싸움을 일으키려고 왔다는 것이다. 다만 전쟁의 성격이 다를 뿐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전쟁은 평화를 위한 전쟁이며, 영생과 진리를 위한 영적인 전쟁이다.


인간세계에서 평화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계속 연구되어, 왔지만, 그것은 아직 구상의 단계이고 현실적인 평화 확보의 보증은 없었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앞으로 제3차 세계대전은 없다고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본이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망상은 원자탄 세례를 받고야 끝이 났지만, 앞으로는 원자탄이 문제가 아니라 가공할 무기들이 강대국마다 산더미처럼 저장해 놓고 있는 상태에서 인류에게 어떤 비극적인 종말이 다가올지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이는 세계 3차 전쟁을 가상하고 하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불안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 남과 북이 분단되어 아직도 휴전선에서는 같은 민족끼리 총구를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전쟁이 일어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이하 정치인들은 평화를 입버릇처럼 외치고 있다.

평화를 전제로 해서 휴전선의 철책도 무너뜨리고 경계도 최전방 감시 초소도 허물어 버리고 국민의 심리적인 상태에서 긴장감과 경계심도 무너지고 있는데 정부는 북한과 어떤 평화의 확실한 약조라도 받았는지 평화통일이 임박한 것 같이 평화에만 매달리고 있는데 국민의 마음에는 확신이 없고 일부 국민만 정부 정책에 호응하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상태이다.

이상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을 평화의 동지로 보고 있는데 북한에서는 평화라는 말보다 강력한 현대무기를 개발하여 군사적인 힘의 우위만이 진정한 평화와 안정이 보장된다고 하고 있으니 매우 걱정스럽고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성경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라고 경고한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6, 25 동족상잔을 겪은 세대는 북한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들의 말은 더욱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 손바닥 뒤집듯이 대화와 약속을 깰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정부와 여당은 평화를 부르짖고 있는데 평화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힘이 있어야 평화도 있다. 그래서 국력이 있어야 한다. 국력이 약(弱)하면 대화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냉철한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평화를 보장하는 배경으로서 안보 능력이다. 경제와 군사적으로 힘이 우세해야 대화와 평화 회담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지 힘이 약하면 항상 굴욕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북한은 한국과 평화를 공존해야 한다고 진정성 있게 말한 것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여차하면 서울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위협은 수없이 해도 남과 북이 협력해야 진정한 평화통일이 된다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국민들의 대부분의 여론이다.

평화는 힘의 우위가 판가름한다. 힘이 없어 약자이면 언제나 협상에서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정글의 법칙인 약육강식(弱肉强食)인 논리가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권을 잡은 정치인들은 평화를 통치수단으로 사용해서도 아니 되고 국토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국력을 키워 적의 도발과 위험성을 막아내기 위하여 국민에게 솔직하게 알려서 정부와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내 조국은 내가 지킨다는 구호 아래 하나로 뭉쳐 국가를 도적질하려는 적을 막아내어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생명도 적에게 빼앗기거나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유비무환(有備無患)의 고사성어를 국가의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아 진정한 평화통일의 초석을 놓아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국론이 분열되어 국력이 약한 허점을 보여 적이 침략할 수 있는 빌미를 주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국력이 약한 상태에서 대화만으로 평화를 누리기에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울 것이다.

평화는 좋은 것이지만, 평화를 얻기에는 대화도 필요하지만, 대화가 통할 수 있도록 힘의 우위를 선점하고 대화를 해야지 국력이 약화(弱化)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화를 내세우는 것은 약자의 궤변적인 논리에 불과할 뿐이다.
2019-06-16 06: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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